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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터스컬루사 시와 운전 배우기

등록 2014-04-28 18:39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1. “바쁜 공무원들을 1주일이나 불러서 이게 할 일이야?” 2009년 1월 미국 앨라배마 주의 터스컬루사 시장 월터 매덕스는 시 공무원 66명과 함께 무려 일주일간 메릴랜드에 위치한 연방재난관리청 소속 위기트레이닝센터에 들어가 시뮬레이션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일부 공무원들은 투덜거렸지만, 시장이 함께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이 교육은 시 소방대장 앨런 마틴의 치밀한 설득으로 성사된 것이다. 30년 넘는 소방관 경력을 가진 마틴 대장은 이 도시가 재난관리에 취약점이 있다는 생각을 했고, 2008년 봄 시장이 참여한 가운데 앨라배마대학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매덕스 시장은 자신이 위기상황에서 제 역할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고, 마틴의 제안대로 일주일간의 대규모 연합훈련을 결정한다. 훈련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이후 마틴 대장이 통합 재난관리 계획을 만들 때, 일부 부서는 반발했지만, 이럴 때마다 시장은 최고 위기관리 전문가인 마틴의 뒷심이 되어주었다. 시 당국은 재난관리체계를 계속 개선해 나갔고, 시장은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은 전문가들이 위기상황에서 다른 데 신경쓰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다. 그는 각기 다른 기관들이 위기상황에서 팀워크를 발휘하려면 훈련 과정에서 밀접한 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위기대응 매뉴얼을 ‘몸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위기상황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보라는 것을 깨닫고, 기자회견에서부터 정확한 정보 확산 방법까지 세밀하게 연습했다.

2011년 4월 터스컬루사 시는 12일 간격으로 토네이도가 두 차례 들이닥치는 영화에서도 보지 못할 최악의 자연재난을 당하게 된다. 53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시장과 공무원들은 훈련받은 대로 시민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조처를 했고, 토네이도가 지나간 지 일주일이 되지 않아 도시 시스템의 ‘정상상태’ 전환을 선언할 수 있었다. 후일 매덕스 시장은 자신이 마틴 대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런 대응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2. 처음으로 자동차 운전대를 잡던 때를 떠올려 보자.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필기시험만으로는 안 된다. 실기시험도 보고, 도로연수도 해야 한다. 그러고도 ‘몸에’ 운전기술이 붙을 때까지 1~2년은 걸린다. 위기관리 컨설팅을 하면서 위기관리란 운전을 배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운전면허 교재를 갖고 공부해 봐야 운전은 불가능하다. 직접 운전대를 잡고 몸으로 익혀야 한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위한 교재에 불과하다. 위기대응은 ‘몸’으로 배워야 한다. 우리 정부나 기업에는 필기시험도 제대로 준비 안 한 곳이 많고, 더 큰 문제는 몸으로 익힌 전문가나 기관은 극히 소수라는 점이다.

4월 초 주로 미국의 재난관리 분야에 종사하는 공무원들과 함께 위기관리 교육을 받았다. 엿새 동안 서른 시간에 가까운 집중교육을 받는 마지막날인 4월11일 터스컬루사 시의 사례를 배웠다. 수료를 하면서 배운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교수의 질문에 나는 ‘사전 훈련의 중요함과 그 효과’를 배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지 사흘도 되지 않아 몸으로 배우기는커녕 필기시험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정부를 믿고 사는 국민들이 어떤 끔찍한 일을 당할 수 있는지를 몸서리치게 목격했다. 세월호 참사와 한국 정부의 대응은 이제 전세계 위기관리 교재에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그동안 ‘김호의 궁지’ 칼럼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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