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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정권의 작은 이익’과 ‘민족의 큰 이익’ / 김보근

등록 2010-07-22 20:58

김보근 스페셜콘텐츠부장
김보근 스페셜콘텐츠부장
진보단체 지도부에 대한 구속과 수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일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공동대표가 20일간의 국가정보원 조사 끝에 구속 상태에서 검찰에 이관됐다. 같은 날 6·15남측위 대구본부 오택진 집행위원장 집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이미 6·15부산본부 장영심 전 집행위원장과 도한영 사무처장은 국정원 부산지부 등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공안당국은 이들에게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둔다.

이런 잇단 조사는 정부의 ‘정국운용 구상’과 관련 있는 듯하다. 공안몰이를 통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정부는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에도 4대강 사업을 강행함으로써 국민적 반발에 직면해 있다. 정부 입장에서 볼 때 하반기엔 더 많은 ‘위험요소’들이 존재한다. 전시작전권 반환 연기와 이에 따른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가능성, 천안함 관련 합동조사단 발표에 대한 지속적인 의혹 제기, 게다가 야간 옥외집회 금지를 규정한 집시법의 효력 상실 등은 정부를 긴장하게 만드는 요소들일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면 자칫 ‘제2의 촛불정국’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잇단 구속·수사는 공안당국이 이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진보단체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는 분석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특히 6·15 행사 참석차 방북중인 한상렬 목사(진보연대 상임고문)가 8·15에 맞춰 귀환할 때 이와 엮어 파급력을 키울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이 애용하던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정국 전환’이라는 낡은 무기가 다시 등장한 모양새다. 하지만 현재 공안당국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당국의 허가를 받고 북한 사람을 만난 사례들’이란 점에서 전혀 다른 상황전개이기도 하다.

한충목 대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대표는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이 함께한 각종 공동행사에서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핵심적 구실을 해왔다. 한 대표는 이를 위해 북쪽 대표와 여러 차례 만났다. 모두 정부가 허락한 것이었다. 그는 남북이 합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동행사를 주도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2004년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한나라당)으로부터 감사패를, 2005년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그런데 공안당국이 북한 쪽 대화 파트너였던 리창덕 북쪽 민화협 전 사무국장 등 3명을 ‘대남공작원’으로 지목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공안당국은 한 대표와 북쪽 대표의 만남을 ‘회합통신’으로, 남북 실무회담을 ‘지령수수’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명백히 ‘정국 전환’이라는 작은 이득을 탐하면서 ‘남북관계의 미래’라는 큰 가치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안당국의 이런 행위는 미래에 진행될 남북대화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 누가 남북대화에 나서려 할 것인가. 정부 허가를 받았더라도 남한 내부 사정에 따라 어느날 갑자기 보안법 위반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 문제는 또 남한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리창덕 전 사무국장 등은 남북행사 협의 때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들이다. 이에 따라 수백명의 남한 사람이 그와 만났다. 그런데 그중 유독 진보단체 관계자들과의 만남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그의 구속에는 평소 정부의 대결적 대북정책을 비판해온 데 대한 ‘괘씸죄’도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안법을 ‘자의적인 몽둥이’로 활용하면 법에 대한 신뢰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달 12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백낙청 교수,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한충목 후원의 밤’이 열린다. 그 자리는 ‘희생양 한충목’을 돕는 자리이면서, ‘작은 정권 이익’에 매몰돼 ‘큰 민족 이익’을 훼손하는 정부를 질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김보근 스페셜콘텐츠부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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