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김지운 감독의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ㅇ씨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은 짜증이 났다. 제한상영가? 아직도 그런 판정을 내린단 말이야? ㅇ씨 생각에 지난 10여년 동안, 가장 확실하게 좋아진 것 중의 하나가 영화 매체에서 표현의 자유의 확장이었다. 전에는 음모 나오면 안 된다고 난리를 떨었는데, 이제는 성기까지 노출한 채로 일반 극장에서 상영된다. 등급 판정으로 논란을 빚는 일도 거의 사라져서 ㅇ씨는 ‘제한상영가’라는 등급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전히 살아 있었다. 짜증이 난 건, 이 영화가 제한상영가 등급의 대상이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제한상영가라는 제도 자체였다.
다시 보니 놀라운 게 있었다. 김지운이라면 영화의 완성도나 흥행 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감독인데, 그의 영화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리다니. 판정의 이유가 ‘섹스’ 아닌 ‘폭력’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당연히 ‘어떤 영화이기에…’ 하는 궁금함이 생겼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으로 ㅇ씨의 머리를 채운 건 일종의 기대감이었다.
‘힘센 이들 간의 싸움을 부추기는 게 언론의 할 일’이라고 미국의 한 저명한 언론인이 말했다. 부추겨서 싸움이 계속되면 문제의 본질이 드러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해진다는 얘기일 거다. ㅇ씨의 기대감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번 판정을 계기로 제한상영가 제도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알려지고 공감을 얻어 개정의 목소리가 나오길 원했다. ㅇ씨 생각에 이 제도야말로 형식과 내용이, 목표와 결과가 어긋나 버려서 하루빨리 뜯어고쳐야 마땅함에도 고치자니 골치 아파 그냥 놔두고 있는, 안이함의 산물이었다.
ㅇ씨는 잠시 영화 심의의 역사를 돌이켜봤다. 90년대 초반까지 영화는 사전 심의 대상이었다가 96년 사전 심의 조항이 위헌 결정을 맞았다. 그러자 특정한 (섹스나 폭력의 표현 수위가 높은) 영화에 대해 등급보류 판정을 내려 상영을 못하게 하는 등급보류 조항이 생겼는데, 이 조항도 2001년 위헌 결정을 맞았다. 그래서 들어온 게 제한상영가 제도이다. 상영을 못하게 하지 말고, 성인만 출입하고 광고, 홍보 등이 제한돼 있는 제한상영관에서 상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의 의미는 ‘제한’에만 있는 게 아니라, ‘상영’에도 있었고 그 때문에 영화인, 문화인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 제도가 도입되자 전국에 5개의 제한상영관이 생겼는데, 5년도 못 가서 전부 다 문을 닫았다. 그런데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리면 어디 가서 영화를 틀까. 제한상영관이 없어졌다면, 그것도 5년 전에 사라졌고 다시 생길 가능성이 손톱만큼도 없다면, 제도를 다시 만드는 게 상식 아닐까. 제한상영관 없이 내려진 제한상영가 판정은 상영 불허와 다름없고, 나아가 영화사 쪽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요구에 맞춰 필름을 손질하기 시작하면 ‘사전 심의’와 동의어가 된다. 이건 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ㅇ씨의 기대는 무리였다. 싸움이나 항의는 없었다. <악마를 보았다> 제작사는 필름을 두 번 손질해 ‘18살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고 일반 극장에서 개봉했다. 아쉽지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제작비 70억원이 들어간 상업영화를, ‘필름에 손댈 수 없다’며 상영을 미룰 수 없었을 거다. ㅇ씨 생각에 아쉽기로 치면, 이 영화의 제작사뿐만이 아니었다. 2008년 헌법재판소가 ‘제한상영가’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더니, 헌재가 지적한 데에 한해 법조문만 달랑 고쳐 통과시킨 정부 유관부서와 국회, 그걸 방관하다시피 하고 넘어간 영화계 모두 문제였다.
이쪽은 저쪽 핑계대고, 저쪽은 또 다른 쪽 핑계대고 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90년대 초반으로 시계를 돌리는 데에 일조해온 것 아닐까. ㅇ씨에게 분명하게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있었던 영화 매체에서 표현의 자유의 확장은, 영화인들과 문화·시민단체가 싸워온 결과물이라는 것이었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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