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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임범의 노천카페] 담배 피지 마!

등록 2010-09-17 19:56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담배를 끊었다. 넉 달 조금 넘었다. 아직은 끊었다고 장담 못한다. 넉 달 동안 안 피웠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이런저런 금단현상이 있었다. 열흘 넘으면서부터 사소한 일에 화가 났다. 운전하다 욕을 하고, 길 막히면 혈압이 오르고…. 이십일 뒤부턴 우울해졌다. 사람 만날 약속을 하기가 싫었다. 만나봤자 담배도 못 피울 텐데…. 그런 생각은 허무함을 몰고 왔다. 왜 사는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뭔지, 그런 유의 답 없는 문제제기에 잠시 시달리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은 견딜 만하다. 담배 피울 때의 즐거움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장담 못한다. 29년 동안 담배를 피우면서 중간에 끊은 적이 한번 있다. 넉 달 동안 안 피웠는데 속상한 일이 생겨 다시 피웠다. 그때처럼 속상한 일이 다시 안 생기리라는 보장이 없다. 누군가 그랬다.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평생 참는 거라고.(이 글을 쓰는 지금 잠깐, 피우고 싶다.)

삼성전자가 사업장 안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함은 물론, 담배와 라이터를 가지고 출근하지 못하게 한다는 뉴스를 봤다. 담배 한창 피울 때는 이런 기사들, 공원에서 못 피우네, 차에서 못 피우네 따위를 접하면 화가 났다. ‘행복추구권, 신체자유권의 침해라고!’ 이번엔 달랐다. 남의 일 같았다. 삼성전자 다니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담배 끊었어?” “내가 어떻게 끊냐?” “너네 회사 담배 아예 못 가지고 출근하게 한다며?” “응, 내년부터.” “그럼 몸수색을 해?” “아니래도 우리 회사는 출근할 때 검색대를 여러 개 거쳐.” “그럼 회사 밖으로 나가서 피우고 와야 하나?” “나갔다 들어오는 데 시간이 보통 걸리는 게 아냐.” “그럼 넌 어쩌냐?” “몰라. 아무개 회사에서 담배 피운다고 인사 불이익 당한 직원이 소송 내서 이긴 일 있다며?” “너도 소송하게?” “미쳤냐?”

전에 다른 한 친구가, 그 역시 담배를 많이 피웠는데, 담배를 물고서 이렇게 말했다. “독재자가 한 명 나와서 담배 이거 확 금지해 버렸으면 좋겠어.” 삼성전자 기사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포스코도 그러더니 삼성전자까지, 저런 식으로 대기업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하면 곧 대세가 될 거다. 그러면 내가 다시 담배를 피우려고 해도 힘들 거다. 그래, 삼성전자 파이팅! 포스코 파이팅!’

그런데 아무리 내가 담배 안 피운다고, 이래도 되나? 민주주의에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함, 비효율이 있는데…, 개인의 자유를 조금만 누르면, 그걸 잠깐만 용인하면 깨끗이 해결되는 지름길이 있는데…, 그걸 마다하고 비효율을 감수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인데…, 이러면 안 되지! 회사원들이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들의 소지품까지 문제 삼는다고? 결과적으로 담배 끊고 건강해지면 좋지 않으냐고? 그러는 사이 암암리에 기업이 사원들의 가부장이 돼 생활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용인돼 간다면 그게 더 큰 문제 아닐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게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결과의 유혹이 유달리 클 때가 있다. 흡연, 금연 같이 건강과 직결된, 그럼에도 개인 의지로 어떻게 하기 힘든 일들이 그럴 거다. 날이 갈수록 건강·위생·안전 같은 가치들이 중요해지지만, 권력이 개인 생활 안에 군림하려 할 때 가장 쉬운 빌미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가치들 아닐까. 나나 내 친구가 잠시나마 내 의지를 권력에 위탁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문제, 다른 많은 흡연가들도 그렇게 생각해 봤음직한 그 약한 고리, 담배를 두고 기업까지 이렇게 파고 들어오지 않는가.

그런데 담배 끊은, 아니 안 피우고 있는 내가 이런 소리 해도 되나? 삼성전자 친구의 부인이 이 글 보고 할 소리가 벌써 귀에 들린다. “자기는 끊어놓고, 친구가 모처럼 담배 끊을 기회가 생겼는데 독려하지는 못할망정 뭐라고? 니코틴에 절어 골골대는 친구를 앞에 놓고 뭐, 민주주의?” 역시 민주주의의 게임의 규칙은 당사자가 나서야 한다는 거다. 민주주의는 불편한 게 많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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