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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피자 턴어라운드’

등록 2010-10-06 19:51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대량생산에, 지겹고, 별볼일없는 피자!” “피자는 마분지 수준…” “냉동피자가 훨씬 더 낫다!”

세계 최대의 피자배달업체인 ‘도미노피자’에 대해 미국 소비자들이 쏟아낸 불만이다. 2009년은 이들에게 최악의 해였다. 미국내의 한 소비자 선호도 조사에서 꼴찌를 기록할 정도로 소비자 불만은 극에 달했고, 주가도 형편없었다. 지난해 4월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한 매장에서 일하는 두 직원이 도미노피자를 만들면서 치즈를 코에 넣는 등 역겨운 장면을 장난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조회수만 백만을 넘는 커다란 위기를 겪었고, 결국 최고경영자(CEO)가 나서서 사과해야 했다.

1960년 미시간주의 작은 피자가게를 인수하면서 출발한 이 회사는 2010년 창립 50돌을 맞아 지난해 12월부터 ‘대담하게’ 위기 돌파를 시도한다. 무려 8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은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 ‘피자 턴어라운드’의 광고와 동영상의 시작 부분에 위의 불만들을 그대로 ‘노출’ 시킨 것이다.

이들이 ‘살짝’ 정신 나간 것은 아닐까? 장점을 자랑해도 모자랄 판에 소비자 불만을 광고 맨 앞에 보여주다니! 하지만 이들은 ‘투명성의 시대’에 진정으로 소통하는 원칙과 기술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소비자 기대에 못 미쳤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뒤, 소비자들의 피드백에 근거하여 피자 조리법을 모두 바꾸는 변신을 시도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분기별 매출에서 14.3% 상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었다. 올해 들어와 상반기 주가는 전년 대비 70%나 성장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현재 또 한 가지 캠페인 “당신의 피자를 보여주세요”(Show us your pizza)를 진행중이다. 보통 음식 광고를 만들 때에는 스타일리스트 등이 동원되어 ‘엄청난 치장’을 한다. 즉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하는 피자보다 훨씬 더 좋게 보이게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화장도구’를 동원해 더 맛있게 보이도록 꾸민다. 도미노는 앞으로 이런 치장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대신 소비자들이 직접 배달받은 피자 사진을 그대로 찍어서 기업 홈페이지에 올리면, 선정하여 상품을 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단점도 투명한 공개를 통해 성장 전략으로 ‘턴어라운드’(전환) 시키는 시대에 기본적인 정보마저 공개하지 않고 후퇴하는 사례도 있다. <한겨레> 보도를 보니 현 정부 들어 중앙행정기관의 정보공개율이 참여정부에 비해 급감한 67% 선에 머물렀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4∼2007년에는 78∼80% 수준이었다. 정보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정보공개심의회’를 연 횟수도 2007년 991건에서 2009년 680건으로 급감했다.

미국 잡지 <애틀랜틱>에 따르면 빌 클린턴 행정부는 정보공개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비밀로 분류할지 말지) 고민되면 비밀로 분류하라’는 원칙을 갖고 있던 반면, 클린턴은 ‘고민되면 공개하라’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클린턴 정부에서 기밀서류는 부시 행정부의 6분의 1, 레이건 행정부의 4분의 1 이하였다. 투명성의 시대, ‘공정한 사회’에는 클린턴의 분류 원칙이 더 적절하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군에서 정보장교로 복무한 필자는 보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보안’은 오히려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을 생산하게 하여 비밀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오히려 유출 사고를 빈번하게 만들며, 불필요한 의혹을 키우는 역효과가 있다. 정작 보호해야 할 중요한 보안기밀들은 새어나가고, 공개해야 할 정보들은 감추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피자회사가 ‘턴어라운드’(180도 전환) 하듯, 우리 사회도 ‘공정사회’로 ‘턴어라운드’ 하려면, 정보공개 방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소통은 ‘싼티’ 자체이다. ‘부티’ 나는 신뢰는 약점도 공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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