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동영상의 시간은 딱 59초였다.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올해 3월 만든 유튜브 비디오 말이다. 평범한 사무실에서 따분한 작업을 하던 한 남성이 네슬레의 히트상품 킷캣(KitKat) 초콜릿을 집어든다. 지나가던 직장 동료가 깜짝 놀란다. 그가 입에 가져간 것은 초콜릿 빛깔의 오랑우탄 손가락이었고, 이를 한 입 베어 물자, 턱과 컴퓨터 키보드 위로 피가 뚝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네슬레는 초콜릿 생산을 위해 인도네시아의 시나마스라는 기업으로부터 팜유를 납품받고 있었다. 그런데 시나마스는 오랑우탄의 서식지인 열대우림을 심각하게 훼손해 가면서 팜유를 만들어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그린피스는 네슬레를 비롯해 유니레버, 크래프트 등이 이런 환경파괴 기업과 거래를 한다는 것은 비도덕적인 처사라고 비판하면서 시나마스와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했다.
그린피스는 동영상과 함께 네슬레에 대한 리포트 표지의 킷캣 초콜릿 로고에 ‘킬러’(살인자)라는 문구를 삽입했고, 동시에 네슬레 본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동영상은 첫 24시간 만에 10만명, 곧 150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결국 네슬레는 시나마스로부터의 구매를 모두 중지하고, 향후 환경을 훼손하는 업체와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숲을 보호하는 비영리기구 ‘더 포리스트 트러스트’(The Forest Trust)의 회원으로 가입해 환경보호 활동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버거킹, 유니레버 등도 시나마스사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필자는 주로 기업의 돈을 받고 어떻게 소비자들을 설득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해왔다. 따라서 기업은 물론 정부나 정치인, 시민단체 등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관찰한다. 필자는 현 진보세력을 딱히 지지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진보세력이 더 성공적으로 시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린피스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첫째, 그린피스는 네슬레가 오랑우탄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시나마스와의 거래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일반적인 시민의 삶, 즉 직장인의 일상으로부터 모티브를 이끌어냈다. 동영상 59초 중 단지 19초만을 자신들의 직접적인 주장과 관련한 장면을 보여주는 데 썼다. 둘째, 우리는 공공기관과 기업 앞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이제 시민운동은 좀더 창의적일 필요가 있다. 그린피스는 어떤 기업의 마케팅 캠페인보다 창의적이고 전략적이었다. 셋째, 몸과 머리와 기계의 적절한 조화이다. 글로벌 기업인 유니레버사는 지난해 12월 시나마스 계열사로부터 팜유 구매 중단을 발표하면서 그린피스가 제시한 증거가 ‘거부할 수 없는’ 증거였다고 밝혔다. 그린피스의 접근은 과학적 근거(머리)에 바탕을 두고, 전통적인 시위(몸)는 물론,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기계)를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여당과 기업을 감시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공격해야 하는 운명에 서 있다. ‘건강한 싸움’을 걸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싸움의 기술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가 있다. 공격하는 것에는 30%만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70%는 시민들과의 공감을 확산하는 데 써야 한다. 우리 국민은 야당이 여당을 반대하고 공격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지만, 야당이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는 극히 저조하다.
미국의 진보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어떤 틀을 부정하는 것은 그 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박하기 전에 당신 자신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적으로만 보자면, 현재 보수는 ‘친서민’ ‘공정사회’ 심지어 ‘개혁’이라는 틀로 시민들과 공감을 확산하려 하고 있다. 진보는 보수의 틀을 부정하고 있다. 공격에만 올인하면 결국 보수만 강화시켜줄 위험이 있다. 진보세력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공격’이 아니라 ‘공감’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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