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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굿바이 삼성 vs. 헬로 삼성

등록 2010-11-17 20:01

2009년 6월1일은 글로벌 브랜드 신발업체인 팀벌랜드 최고경영자(CEO) 제프 스워츠에게 평생 잊지 못할 날이다. 그린피스 지지자들로부터 무려 6만5000통의 똑같은 편지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팀벌랜드가 브라질로부터 사들이는 가죽이 산림 파괴는 물론 노예 노동자 양산, 아마존 토착민 방출 등에 도움을 주고 있을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었다. 그린피스는 브라질 농부들이 목초지 조성을 위해 불법으로 아마존 열대림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를 삼대째 물려받은 스워츠 사장에게 임원들은 이렇게 조언했다. 브라질로부터 구매하는 가죽이 7%에 불과하니 거래처를 돌리고 “앞으로 브라질에서 안 사겠다”고 선언하여 사건을 빨리 종결하라고.

하지만 스워츠 사장은 그린피스가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했다. 팀벌랜드에 가죽을 납품하는 브라질 업체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곧 조사에 착수한 그는 공급업체들이 어떤 소에서 가죽을 생산하는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신선한 접근을 시도한다. 그린피스와 손잡고 가죽의 원산지 추적 시스템을 만들고, 협력업체에는 이를 적용해 환경훼손 지역에서 가죽을 공급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나이키도 이런 접근을 따라 유사한 정책을 채택하게 된다. 결국 2009년 7월29일 팀벌랜드를 압박하던 그린피스는 팀벌랜드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지난달 <굿바이 삼성>이라는 책자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삼성이 하나의 ‘권력’으로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고발하고, 과감하게 삼성 불매운동을 제안한다. ‘물론’ 출간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불매운동은 별다른 탄력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삼성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삼성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돈을 들여 ‘좋은 일’들을 한다. 기여하는 분야만 해도 복지, 환경, 연구, 봉사, 문화, 교육, 스포츠 지원 등 다양하다. 2006년에는 이건희 회장 일가 사재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삼성으로서는 사회적 책임을 할 만큼 하고 있는데, 일각에서 너무 부정적으로만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삼성은 그렇게만 생각해도 될까?

지난 11월1일 국제표준화기구는 사회책임경영을 위한 지침 ISO 26000을 발표했다. 이는 지배구조, 인권, 노동, 환경, 공정성, 소비자, 지역사회 등의 영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평상적으로 ‘좋은 일’로 여기는 것이 반드시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책임은 사회의 기대가 무엇인지 귀기울이고, 이에 반응하는 것이다. 비자금, 경영권 세습, 백혈병 노동자 문제, 무노조 경영 등의 ‘불편한’ 이슈에 침묵하면서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에 ‘자선’을 행할 때, 삼성은 ‘좋은 일’은 하지만 ‘책임’은 다하지 않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난 9월 홍콩에서 열린 기업의 사회적 책임 회의에 참석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기업이 이제는 ‘합법화’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비판을 포함한 ‘기대치’(expectation)의 영역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경영권 세습의 합법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무엇인지에 기업은 신경써야 한다는 말이다.

팀벌랜드의 사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삼성이 ‘굿바이 삼성’을 외치는 사람들과 손잡고 더 훌륭한 삼성을 만들 수는 없을까? 마케팅의 아버지인 필립 코틀러는 최근 저서 <마켓 3.0>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이제 ‘당신이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무엇에 신경쓰느냐’에 관심”이 있다고.

‘굿바이 삼성’을 잘 들여다보면 ‘헬로 삼성’의 해법이 담겨 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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