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2010년에는 주목할 만한 국민 의식구조의 변화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인 여론 형성을 가로막는, 북한과 족벌언론, 지역주의라는 세 가지 주술이 모두 풀려버린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갖고 6·2 지방선거에 이용하고자 노골적인 부풀리기를 했고 족벌언론은 첨병 노릇을 했다. 과거 같으면 그냥 먹혀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여당은 선거에서 참패했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비한나라당 후보들이 선전하거나 당선된 것은 지역주의가 완화되고 있다고 볼 근거다.
‘연평도 포격 이후’에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지난 24일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북한의 공격에 대해 ‘①확전되더라도 강력한 군사대응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4.8%다. ‘②교전수칙에 따라 대응하되 확전은 막아야 한다’는 응답은 33.5%, ‘③군사적 대응은 자제하고 외교적, 경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응답이 16.2%로 나타났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솟구쳐 있을 포격 직후의 조사인데도, 정부가 기조로 잡고 있는 ‘①확전 불사 군사대응론’이 절반의 지지도 못 받고 있다. 야권의 담론이라 할 ‘②+③ 확전 자제 평화관리론’이 ①을 되레 조금 앞서고 있다. 북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라는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갈 때, 국민들이 맹목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한 안목을 유지하고 있음이 또다시 확인되는 셈이다. 천안함 시국의 여론 변동 선례처럼 시간이 가면서 ①은 줄고, ②+③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정책을 결정할 때 여론을 잘 살피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 정부의 안보정책은 객관적 현실을 무시하고, 오로지 일부 보수층의 감성적 주문에만 편승하는 인상이 물씬 풍긴다. 국방장관 경질과 교전규칙 수정, 군사력 증강배치, 서해 한-미 연합훈련 등의 움직임이 모두 그런 꼴이다.
이런 방식으로 북한을 길들이긴 매우 어려울 것이다. 되레 추가 도발과 충돌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 그런데 보수층의 끓어오르는 강경여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일단 타면 내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효과를 내든 말든 관계없이 지금의 강성기조를 좀처럼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남북 사이에 좀더 강한 충돌이 예상되는데 위기를 관리할 수단도 없는 불안한 상황이 꽤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보 포퓰리즘의 위험성이다.
야당은 야당대로 여론을 잘못 읽고 있다. 민주당은 얼마 전 국회의 ‘북한의 무력도발 규탄 결의안’에 ‘한반도 긴장 완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남북간 대화 촉구’ 원칙을 넣자고 주장하다가 맥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남북관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는 민주당으로서 자신들의 가치가 담긴 깃발을 분명하게 지켜야 하는 영역이다. 여론도 불리하지 않다. ‘②+③ 확전 자제 평화관리론’이 벌써부터 우세하고 지지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천안함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신감을 잃고 보수여론 앞에 멈칫거렸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2012년 정국에서 복지담론이 진보의 대안이 될 가능성은 낮고, 대신에 남북관계가 훨씬 중요한 의제가 될 것으로 봤다. 가령 박근혜 의원도 복지국가를 하겠다고 하는 마당에 복지를 더 전면적으로 하겠다고 하는 쪽이 꼭 이길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마침 박 의원은 연평도 포격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대응해야”라며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지금은 야당의 대선 주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여당의 경쟁자와 논쟁을 붙어볼 만한 기회이기도 하다. 아무튼 야당이 소극적으로 눈치 행보를 할 때는 아니다.
북한의 도발과 남쪽 정부의 안보 무능이 맞물리면서 우리 삶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국민 의식은 앞서가는데 정책과 정치가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지는 것도 안타깝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