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다 끝난 ‘통큰 치킨’ 이야기를 뒤늦게 꺼내려니 좀 쑥스럽다. 하지만 결론이 뻔한 연평도 포사격훈련 이야기를 하는 것보단 나을 듯해서.
값싼 치킨 먹겠다고 늘어선 긴 줄을 보며 착잡했다. 집 부근 미국의 회원제 할인점인 코스트코에서도 조리된 치킨이 5달러다. 크기는 ‘통큰 치킨’의 1.5배는 됨직하다. 미국에서 치킨을 배달해서 먹으면, 배달료에 팁까지 30달러 가까이 줘야 한다. 하지만 ‘코스트코 치킨’ 때문에 동네 치킨집이 망하진 않는다. 그러니 사회문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치킨집이 별로 없다.
미국에서 소비생활을 하면 두 번 놀란다. 먼저는 엄청나게 싼 제품가격에, 그다음엔 엄청나게 비싼 서비스요금에. 얼마 전 팀벌랜드의 겨울재킷을 세일 가격에 샀다. 30달러에. 한국에서라면 그 7~8배는 줘야 하지 않았을까? 라벨을 보니, 얼마 전 노동자 소요가 일어난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것이다. 딸아이에게 사준 노스페이스 패딩점퍼도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였다. 딸아이가 말했다. “역시 미국이 한국보다 잘사나 봐. 한국 아이들도 노스페이스 입고 싶어하지만 이 옷 입은 아이들이 많진 않은데, 미국 아이들은 다 있어”라고. 미국이 한국보다 잘살기도 하지만, 한국보다 값이 훨씬 싸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수입제품의 마진이 턱없이 큰 탓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전세계가 최저가를 제공한 탓도 큰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서비스요금을 볼라치면 딴세상이다. 중고차가 가끔 말썽을 부린다. 수리점 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배터리 바꾸는 데 130달러, 타이밍벨트 1000달러, 에어컨 갈면 3000달러. 중고차는 1만1000달러에 샀는데, 1년 반 동안 든 수리비가 6000달러다. 얼마 전엔 프린터가 고장 났다. 수리를 할까 했더니 ‘손대면 150달러’라 한다. 못 고쳐도 상관없단다. 의료비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선 1만원 안팎인 물리치료가 미국에선 보험 없다면 한 번에 150~200달러다. 미국 사람들이 너나없이 운동에 열심인 것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돈 없이 아프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비싼 서비스가 만족스럽지도 않다. 많은 나라에 다녀본 건 아니지만, 한국보다 서비스가 더 좋은 나라를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전자회사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려면 울화통이 터진다. 전화를 걸면 미로찾기 하듯 몇 번이나 번호를 눌러야 ‘사람’과 대화할 수 있지만, 안내원의 이상한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다. 나는 그때 미국에서 인도에 있는 서비스센터 직원과 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주일을 더 기다려야 서비스 직원 얼굴을 볼 수 있다.
종합하면, 미 경제시스템은 자국민 노동에는 최대한의 가치를, 외국 노동에는 최소한의 가치를 두는 구조다. 그래서 ‘소비자 천국’과 ‘서비스 지옥’이 공존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기술만 있다면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졸자 실업문제도 마이스터고교 100개 만드는 게 해법이 아니라, 고교 졸업자에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고통을 내가 받아야 해결이 가능하다.
‘통큰 치킨’ 논란이 일 때, 보수는 ‘소비자 선택권’에, 진보는 ‘자영업자 생존권’에 더 가치를 두는 듯했다. 진보란 ‘남’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는 쪽일 것이다. 치킨이야 5000원짜리 아니어도, 1만~2만원짜리 사 먹으면 되지만,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위해 10배 더 비싸게 옷을 사야 하고, 자동차수리 할 때마다 가슴 졸여야 하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꺼이? 그래서 ‘진보’처럼 생각하긴 쉬워도, ‘진보’답게 살긴 참 힘든 것 같다. 게다가 대개 진보는 가난하지 않은가? 나도 싼 옷이 좋은데….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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