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그날 저녁 모임은 화기애애했다. 케이씨가 깜짝 선물로 준비해 온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일 땐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몇 해 전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올랐다.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리는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고 깍듯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나이와 직장도 다 다른 우리는, 흔히들 오래가기 어렵다고 하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케이씨가 불현듯 앞에 앉은 선배에게 물었다. “늘 궁금했는데, 문자가 좀…” 문자? 문자메시지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돌발 질문이라도 받은 듯 선배가 좀 당황했다. 케이씨는 모임의 막내로, 모임의 발의부터 이 사람 저 사람 사정을 고려해 시간과 장소를 잡는 번거로운 일을 도맡아오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문자로만 이루어진다. 서로 안부가 궁금할 때도 우리는 먼저 연락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케이씨가 연락하기만을 기다릴 때가 많았다.
오랜만에 얼굴 볼까요, 라는 문자에 돌아오는 그 선배의 문자는 ‘네’. 몇 날 몇 시 어디에서 보기로 했어요, 나오실 거죠? 라는 문자에도 역시 ‘네’라는 짧은 답변만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받은 가장 긴 대답이라곤 ‘네, 알겠습니다’였다고.
그 선배와 문자 안부를 주고받을 기회가 별로 없던 나로서는 그의 문자 스타일인가 보다, 생각은 하면서도 한편 케이씨처럼 의아스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만나는 그는 수다스럽지는 않지만 늘 따뜻한 말로 우리를 격려하고 가끔은 자신의 개인사도 털어놓으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그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던 케이씨는 어느 날 이런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혹시 이 사람, 이 모임에 나오고 싶지 않은 건 아닌가. 매번 ‘네’라는 짧은 대답만 해놓고 모임에 나와 보여주는 모습은 천양지차라 좀 혼동이 된다고 했다. 술이 좀 오른 김에 케이씨가 결연히 물었다. “어떤 게 진짜 모습인가요?”
분위기가 애매해지려는 순간이었다. 남긴 음식과 휴지 조각으로 어지러운 식탁 한쪽에 우리가 촛불을 끄고 나눠먹다 남긴 케이크가 찌그러진 채 놓여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피해보려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문자 그대로, 조금도 과장 없이 사실 그대로, 선배의 직업 때문이 아닐까요. 이모티콘을 달아보는 건 어떠신지요. 선배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서 아직도 휴대전화 이용이 어렵다며 웃었다.
그는 케이씨의 이런 반응이 당황스러울뿐더러 아내에게도 그와 똑같은 단답의 문자를 보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문자 스타일을 바꿀 마음이 없다고 조곤조곤 따뜻하게 말했다. 케이씨의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혹시나 술자리에서만 즐거워지는 남자들의 습성은 아니냐고 꼬집었다.
텔레비전에 나온 한 연예인이 다른 연예인 누구누구와 ‘문자로 안부를 묻는 사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의아해진 적이 있었다. 꽤 친하다는 표현일 텐데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란 직접 통화를 하는 사이보다는 좀더 거리감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도 오래전부터 문자를 더 선호해왔다. 계속 문자만 주고받다가 차라리 통화를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가족의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아이의 방에서도 친구와 통화하는 말소리보다 문자 발신음과 도착음이 새어나온 지 오래이다. 우리는 상대방과 이렇듯 적당한 선을 지킨다.
케이씨는 계속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선배는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밤이 깊었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달달 외우던 훈민정음 언해의 서문 한 부분이 떠오른다.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세종도 수백년 뒤의 우리 현실을 예측하지는 못한 듯하다. 옆에 앉은 누군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아니라 ‘넹’이라고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그날 그 자리를 화기애애하게 지켜낸 ‘종결자’였다. 종결자? 무슨 말이냐고 누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점점 문자로 통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하성란 소설가
케이씨는 계속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선배는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밤이 깊었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달달 외우던 훈민정음 언해의 서문 한 부분이 떠오른다.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세종도 수백년 뒤의 우리 현실을 예측하지는 못한 듯하다. 옆에 앉은 누군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아니라 ‘넹’이라고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그날 그 자리를 화기애애하게 지켜낸 ‘종결자’였다. 종결자? 무슨 말이냐고 누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점점 문자로 통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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