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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궁지] ‘약점’에도 ‘강점’이 있다

등록 2011-03-30 19:48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신뢰처럼 ‘싼티’나는 말도 없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대통령·정부·정당”, “소비자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이란 표어는 이미 국민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표어다. ‘말’로서 매력을 잃어버린 신뢰는 그러나 사회가 사람과 사람의 ‘사이’(間)로 이루어지는 한, 가장 ‘부티’나는 항목이다.

신뢰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쉬운 답은 ‘국민·소비자와 말로 한 약속을 행동으로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쉬운 답을 매번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는 것을. 정치인치고 선거 때 한 약속 지키는 사람 보기 힘들고, 기업은 뜻하지 않은 실수나 알고도 저지른 잘못으로 이 약속을 ‘배반’한다. 신문을 펼쳐보라. 우리 사회에서 ‘신뢰’보다는 ‘배신’의 사례가 훨씬 많다. 물론 나 역시 일을 하면서, 가족과 친구와 삶을 살아가면서 약속을 어길 때가 있다.

나는 최근 몇년간 우리나라에서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밀리언셀러로 유명한 로버트 치알디니 박사와 세 번에 걸쳐 만나, 그가 평생 연구한 주제인 영향력(<설득의 심리학>의 원제는 ‘영향력’이다)에 대해 배우고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심리학이 밝혀낸 영향력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이를 6가지 원칙으로 정리하여 ‘스타’가 된 사람이다. 그중 하나가 ‘권위의 원칙’이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할 때 ‘권위가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따른다는 것이다. 문제는 권위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다. 치알디니는 권위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는 전문성이고, 또 한 가지는 신뢰도다.

그 말로 하기는 쉽고 행동하기는 어려운 신뢰를 얻는 방법에 대해 그는 의외의 해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약점을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그 사람의 신뢰가 달려 있다고 말한다. 신뢰가 약점에 좌우된다고?

1962년 미국의 렌터카 업체인 에이비스(Avis)는 1등인 허츠(Hertz)에 한참 뒤처진 시장 점유율 11%에, 이익도 마이너스였던 ‘2등’에 불과했다. 이들은 상황 전환을 위해 과감하고도 창의적인 ‘역발상’ 캠페인을 시도하게 된다. 바로 만년 2등이라는 자신들의 ‘약점’을 대놓고 ‘광고’하는 것이었다. “에이비스는 2등일 뿐입니다. (하지만 2등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합니다.” 물론, 단순히 약점만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약점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의지와 실질적인 서비스 개선 노력을 소통하고 실행에 옮겼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1년 만에 흑자 전환을 이루고, 4년 만에 시장 점유율은 3배를 뛰어넘어 35%에 도달했다.

위기관리 분야에는 ‘투명성의 패러독스’라는 개념이 있다. 기업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투명하게 잘못을 밝히기보다는 침묵을 지키거나 부인하는 전략으로 갈 때가 많은데, 그게 자신에게 이득일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다. 자기 약점에 대한 투명성이 ‘독’(毒)이 아닌 ‘득’(得)이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석유화학 기업인 셸(Shell)에서 90년대에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이 개념은 21세기에 들어와 소셜 미디어로 투명사회가 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거창한 학습계획표를 세웠다가 이를 지키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용돈을 타 본 경험이 있으며, 상사에게 거짓말을 하고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해 본 경험이 있다.

자신이 한 약속을 대부분 지킨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신뢰하며, 지지한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때론 실수하며 잘못을 저지른다. 오죽하면 ‘실수는 인간적’이란 말이 있을까! 자신의 약점을 털어놓고, 이에 대한 극복책을 고민하는 ‘쿨한’ 태도는 신뢰를, 권위를, 영향력을 가져다준다. 약점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이는 강점이 되기도 한다. 약점에도 강점은 있다.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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