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비에 젖은 자는 뛰지 않지요”라는 말을 중학교 1~2학년 무렵에 알았다. 즐겨보던 수사드라마에서였다. 극의 흐름상 좀 뜬금없다 싶었지만 그만큼 강렬했다. 그 말을 한 연기자의 이름은 물론 표정과 입고 있던 옷까지 선연하게 떠오른다. 궁지에 몰린 그는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허름한 대폿집 나무의자에 앉아 그가 비에 젖은 표정으로 그 말을 할 때는 앞에 서 있던 수사반장도 끝내 아무 말 못했다.
제대로 비를 맞아본 적도 없으면서 아무 때나 그 말을 갖다 붙였다.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쳤을 때도, 숙제를 해오지 않아 벌을 설 때도, 심지어 학교 교정에 둔 책가방을 잃어 집에 갈 회수권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 말이 나왔다. “비에 젖은 자는 뛰지 않아.” 뭔 말이야, 알아듣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핏 코웃음을 치는 친구도 있었다. 아무튼 그 말을 하고 나면 조급한 마음이 느슨해지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기분이 되는 듯했다. 한동안 입에 붙은 그 말은 우연히 그 말을 들은 아버지에게 혼쭐이 나는 바람에 쏙 들어갔다. 나이도 한참 어린 게 다 산 사람 흉내를 낸다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나무랐다. 대체 저게 뭐가 되려나, 심란하게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 말을 경험한 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였다. 그 시절 일기예보는 들쭉날쭉이었다. 여름이면 우산 없이 등교했다가 비를 만나 낭패를 보는 일이 잦았다. 전철역 계단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비 좀 맞지 않겠다고 서 있는 이들을 보자 갑자기 반발심이 일어났다. 앞뒤 재지 않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한여름 장대비였다. 눈으로 빗물이 줄줄 흘러들고 금방 옷이 젖었다. 젖어 축 늘어진 바짓자락이 다리에 감겨 빨리 걸을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죄다 처마 밑에 서 있는지 거리는 텅 비었고 사방 빗소리뿐이었다. 비에 젖은 사람은 뛰지 않는다. 반으로 줄어든 시야 끝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와 차츰 거리가 좁혀졌다. 교련복을 입은 내 또래의 남학생이었다. 영락없이 비 맞은 쥐였다. 잠깐 교차하는 순간 그가 날 힐끗 보았다. 웬 여학생이, 비를 다 맞고, 칠칠치 못하게. 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 몇년 뒤 오규원 선생의 시를 읽다가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발견했을 때는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이미 한번 비에 흠씬 젖어본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체념보다는 희망을 읽었다는 것. 비를 피해 추녀 아래 선 그대와 나, 비가 와도 젖지 않는 강. 그 강을 거슬러 오르는 비에 젖지 않는 고기가 되고 싶었다. 그 뒤 허만하 선생의 시에서도 비를 발견했다. ‘아득한 수면을 본다. 저무는 흐름 위에 몸을 던지는 비,/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그러고 보니 빗줄기는 저마다 혼자 땅 위에 수직으로 서고 있었다. 타닥타닥, 빗줄기가 때리던 얼굴과 어깨, 머리의 감각이 살아났다.
문학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대중가요도 비의 덕을 톡톡히 본다. 비관에 빠진 이가 비를 맞고 헤매다 밤새 열에 들뜬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맞이하는 아침,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에서 비는 단골손님이다.
사월, 세 번의 비가 왔다. 이제 겨우 제 우산을 쥘 힘이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아이에게 우산을 맡기지 않았다.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비는 풍성한 말들을 잃어버렸다. 비에게 남은 건 현실적인 딱딱한 골격뿐이다. 현실적인 것들에 상상의 여유는 없다. 흡연 장면이 사라지듯 드라마에서도 비가 내리는 장면이 사라질 것이다. 비로 연결되었던 많은 연인들이 위태롭게 되었다. 차차 문학에서도 비를 찾아볼 수 없게 될는지도 모른다. 희망의 전언은 사라지고 ‘무슨 전조처럼 온종일 가을비가 구슬프게 주룩주룩’(조병화, <가을비> 중) 내릴 것이다.
봄비가 내린다. 박인수 선생의 <봄비>를 어느새 흥얼대고 있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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