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가수 백설희씨가 <봄날은 간다>를 부른 것이 1954년이라니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의 일이지만, 그 노래와 관련된 어린 날의 기억은 없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에서부터 <아리조나 카우보이>까지 대중가요라면 모르는 것이 없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도 이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성장기의 거친 남학생들에게는 백설희씨의 청아하면서도 흐느끼는 듯한 음조를 흉내내는 일이 쉽지 않을뿐더러, 노래가 전하려는 사랑을 잃은 여자의 속절없는 마음도 그 나이에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이 서른이 넘어서 주변의 어느 사람이 이 노래로 청승을 떨었을 때 내가 그 곡조와 가사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 노래를 알게 모르게 자주 들어왔던 것이 틀림없다.
이 노래는 최백호씨도 부르고, 한영애씨도 불렀다. 최씨의 노래는, 그 사람의 노래가 항상 그렇듯이, 착실하고 진지해서 비애감을 의무처럼 떠맡기고, 한씨의 노래는 그 나른한 권태감으로 사람의 속을 이상하게 갉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라는 말이 도무지 확연하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던 맹세’가 아니라 ‘울자던 맹세’라고 해야 말이 되지 않을까. 음절 수가 하나 더 많은 게 문제라면, ‘울자던’을 ‘울잔’으로 바꾸면 그만일 터이다. 그래서 나는 누가 가까이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그 사람을 돌려세우고 ‘울던’을 ‘울잔’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구 하나에 목을 매다는 것이 내 직업의 특성이라고 하더라도, 직업병이 자못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노래에 관하여, 내가 그 직업적 강박증에서 벗어난 것은 아마도 젊은 가수 김윤아씨의 <봄날은 간다>를 들으면서였던 것 같다. 노래가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말할 때, 저 거짓 맹세는 이제 지킬 수는 없어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약속이 된다. 이 새로운 약속 앞에서라면 ‘울자던’이나 ‘울던’이 더 이상 문제될 수 없다. 이 노래를 엔딩 타이틀의 배경음악으로 삼은 영화, 영화평론가 듀나씨의 말을 빌리자면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 제목을 “징그러울 정도로 지적으로” 끌어다 붙인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도 물론 한몫을 거들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순결한 청년은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것들이 항상 잡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아무리 아름답고 거룩하게 여겨야 할 것이라도,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이 세상에서의 그 실현을 곧바로 보장해 주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성장통이란 말을 끄집어내게 된다. 그런데 합당한 말인가. 그 말이 비록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가득 안고 있다 하더라도, 젊은 날의 고뇌와 고투를 그 미숙함의 탓으로 돌려버리게 하기에도 십상이다.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 내가 사일구와 오일팔의 중간 어름에서 이 글을 쓰고 있기에도 하는 말이지만, 경무대 앞에서 그 많은 학생들이 무얼 몰라서 총 맞아 죽은 것이 아니며, 거대한 폭력에 에워싸인 광주의 젊은이들이 그 마지막 밤에 세상을 만만하게 보아서 도청을 사수하려 했던 것도 아니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는 잘 만들어진 실패담이다.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 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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