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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아들이 울다/황선미

등록 2011-05-20 21:14수정 2011-05-20 21:25

황선미 동화작가
황선미 동화작가
이 공부가 즐겁지 않아, 전혀….

아들의 한숨 끝이 떨리고 있었다. 까칠하게 대들거나 자기비하 발언으로 날 착잡하게 만들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같이 성질을 부릴 수도, 웬만하게 달래볼 수도 없게 하는 자식. 차라리 전처럼 굴면 좋겠다, 싶은 마음 간절한 게 나는 순간 아들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스물세살, 공과대학 3학년. 이제 와서 자기 전공이 암담하단다. 도저히 못하겠단다. 좀더 진즉에 이러든가,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마저 하고 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든가. 어려서부터 매사에 쉬운 게 없어 애면글면 안타깝게 했어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전제는 지켜왔는데, 겨우 유지해 오던 전공을 접을 수도 있다는 이 말에는 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식으로 인해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밖에 없는 이런 현실에서 언제 자유로워지나 한심하기도 하고. 엄연히 성년인 자식이 내 인생을 부지불식간에 쿡쿡 찌르고 그럴 때마다 나 역시 휘청거릴 수밖에 없어 화딱지도 나고.

사실은 조마조마했다. 아들의 감성을 알고 있기에 언젠가 이런 말이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을 담아두고 살았다. 문제는 아들에게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남다른 ‘재주’랄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궁색하게도 공대를 선택한 이유가 엔지니어 정도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였으니. 막연한 그 말에 기대서 3년을 버틴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젊은이라고 모두 패기 넘치고 자기 목표가 분명한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무슨 재주가 있는지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럭저럭.

스물세살. 꽃 같은 나이다. 이 아름다운 시간을 그럭저럭 살아갈 막연한 목표를 위해 참으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 나이 때 나 역시 미래가 얼마나 막막했었나. 아득했다. 믿을 사람도 없고 용기도 없고 주머니는 비었고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도무지 확신이 없었다.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것. 누구도 답을 주지 못한다. 이 불안한 시기에 뭔가 붙잡을 게 있다면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게 없다는 사실이 청년기를 혼란스럽게 하고 절망에 빠뜨린다. 쨍한 빛도 유난히 싫어하고 머리카락으로 눈까지 덮어버리곤 하는 삐딱한 아들과 말없이 홍대 골목을 걸었다.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이 흔들리는 앵글처럼 어지럽게 몰려다니는 길거리. 이들은 왜 이토록 화사한가. 묵묵히 걷기만 하는 아들이 마치 화사한 저네들의 어두운 한 점 그늘 같아 어지럼증이 확 일었다.

작은 영화관에 들어갔다. 세상에 냉담해지고 있는 아들을 꼬드겨서 나온 건 스물아홉살 젊은이가 만들었다는 이 영화를 같이 보고 싶어서였다. 뭘 강요할 생각이 아니었고 모델을 제시할 작정 같은 건 더더구나 없었다. 호평받았다는 이 작품이 궁금해서 시간이 나면 보려던 참이었고 이런 상황에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게 좀 미안했을 뿐이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영상, 거친 숨소리, 욕설, 어른도 애도 아닌 남학생들의 불안한 몸짓, 죽음, 아들의 죽음을 추적하는 아버지의 고독한 모습. 퍼즐을 끼워가야 하는 스토리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옆이 이상했다.

아들이 울고 있었다. 맘껏 훌쩍이지도 못한 채 눈물도 콧물도 제대로 닦지 못한 채. 제 딴에는 조심했지만 냉소적인 아들이 그 정도면 펑펑 우는 거였고, 옆자리의 여자들도 눈치를 챈 듯했다. 여유랄 게 없는 의자에 젖은 빨래처럼 늘어져서 어둠에 의지해 몰래 우는 스물세살 청년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왜 울지? 저럴 만큼의 장면이 있었던가? 어떻게 해야 할까? 신중하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지는 순간 되살아났다. ‘이 공부가 즐겁지 않아. 전혀…’ 하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손수건을 건네주는 것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대답보다 훨씬 더 많은 무엇이 내 아들에게 찾아온 모양이니. 쑥스러웠는지 아들은 나를 보더니 그냥 웃었다. 황선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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