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충남 아산의 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에서 발생한 노사갈등을 놓고 그들이 벌인 행태들을 말한다. 입으로 선진화, 공정사회를 부르짖는 그들이 유성기업 노동자 때리기에는 온갖 후진적 관행을 총동원했다. 그들은 바로 사용자 단체, 정부, 일부 보수언론이다. 그들은 뻥튀기, 엉뚱한 데 화풀이하기, 심지어 뻔뻔스럽게 거짓말까지 동원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유성기업 노조 파업을 경찰력으로 진압해 버렸다.
왜곡은 논리가 아니라 불안함이나 악덕에서 나오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했다. 또 왜곡의 종착지는 대부분 폭력이다. 유성기업 노조의 파업 사태를 두고 그들이 꾸민 왜곡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살펴보자. 지난 주말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유성기업 파업 사태와 관련해 “완성차 생산직보다 높은 연평균 7000만원이나 되는 급여를 받으면서 불법으로 생산시설을 점거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바로 다음날 일부 보수언론이 이를 그대로 인용해 ‘고액연봉자들의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 그러자 신문을 본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23일 열린 자동차업계와의 간담회에서 “1인당 연봉이 7000만원이 넘는 회사의 불법파업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의 발언은 그다음 날 또 일부 보수언론의 사설 등으로 비중 있게 다뤄졌다.
사실 여부를 알아보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유성기업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0년 12월 말 현재 재직중인 유성기업 직원 744명의 1인당 평균 급여는 5710만원(평균 근속연수가 15.7년)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직원의 평균급여(각각 8000만원, 8200만원)에 견주면 훨씬 적다. 그런데 어떻게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고액연봉자인지 자동차공업협회 쪽에 물어보니, 유성기업에서 준 자료에 그렇게 돼 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유성기업은 분식 회계로 허위 공시를 했단 얘긴가. 최중경 장관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유성기업 홍보맨 노릇을 했단 말인가.
노동자의 파업권은 연봉의 과소 여부에 상관없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다.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 당연하다. 그런데 정부는 툭하면 파업에 따른 생산 손실을 업무방해로 보고 처벌한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어긋난다. 오죽하면 유엔(UN) 사회권위원회나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온전한 파업권 보장을 수시로 권고하겠는가.
유성기업 노조의 요구는 지극히 인간적이다. 심야노동을 해야 하는 주야 맞교대를 주간 연속 2교대제로 전환해, 밤에는 잠 좀 자고 일하자는 것이다. ‘일하는 로봇’에서 창의적이고 건강한 지식노동자가 되고자 하는 욕구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256시간(2008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경쟁국과 견주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1년에 두세 달 더 일한다. 일자리 나누기와 일과 가정의 조화를 위해서도 근무제 개편은 당연히 가야 할 방향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그 방향으로 간 지 오래다. 우리 경제가 혁신주도형 동반성장 모델로 전환하려면, 제조업 분야의 과도노동 체제부터 극복해야 한다.
어찌 보면 정부가 유성기업 노조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라디오 연설에서 “선진국 문턱에 들어서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며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가족친화적인 문화로 변화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에 맞춰 고용노동부는 연간 노동시간을 내년에 1950시간, 2020년까지는 1800시간대로 줄인다는 목표의 ‘좋은 일터 만들기’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사민정 공동 캠페인과 노사문화 혁신운동도 펼치겠다고 했다. 이래 놓고서 유성기업 노조가 어렵게 마련한 논의의 장에 재를 뿌렸다. 정부 관계자들이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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