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자 이화여대 간호과학과 교수 한국 자살예방협회 이사
[낮은 목소리]
우리나라는 지난 40~50년간 사회·경제적으로 기적적인 발전을 이뤘고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초고속 압축 성장에 수반하는 사회·문화적 변화는 몇가지 중대한 문제를 야기했다.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는 능력을 강조하게 되면서 타인에 대한 경쟁·무시·폭력을 수반하게 됐다. 우리 사회가 법적·문화적·사회적으로 폭력을 허용하거나 방조하는 사회로 계속 존재하는 한 자신을 향한 폭력의 극단적 형태인 자살은 어떤 형태로든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혼율의 증가로 가족이 해체되면서 가정이 안전한 기지로서의 역할과 정서적·사회적 지지의 기능을 잃고 있다. 이로 인한 소속감의 결여,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의 부재는 자살 충동에서 나를 지켜낼 아무런 힘도 없게 한다. 과잉 보호·통제의 자녀교육은 자녀들에게 좌절과 고난을 견뎌내는 인내력, 분노조절 능력, 사회성, 스트레스·위기관리 능력 등 자아 강건성을 길러주지 못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지금의 청·장년세대는 매우 개인주의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애적 성향이 많아져, 자존심은 높으나 심약하고, 조그마한 위기와 좌절에도 절망하고 쉽게 포기한다.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 역시 그들의 사회·심리적 고립화, 생에 대한 존엄성 상실을 초래했다.
자살은 사회적 전염성이 커서 조기에 차단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만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일차적 책임이 있는 국가가 나서서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예방대책을 강구해나가야 한다.
한 개인의 자살 시도가 도움을 청하는 절규인 것처럼, 우리는 자살 시도를 일반국민·전문가·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 예방·구조 활동을 시급히 요청하는 절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런 절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늦었지만 지난 3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이 통과된 것은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년부터 시행될 자살예방법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중앙자살예방센터를 설치·운영해서 자살 관련 상담, 자살 위기 시 상시 현장출동 및 대응,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자살예방 전문인력 양성 등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7월1일부터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지원으로 ‘핫라인을 통한 통합적 자살예방서비스 체계’가 도입된다.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상담을 해올 경우 생명의전화가 소방재난본부(119)를 직접 연결해 ‘3자 통화’가 가능해진다. 상담 도중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긴급구조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우선 서울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이 앞으로는 전국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2개의 다리(서울 마포·한강대교)에도 ‘SOS생명의전화’를 설치해 운영할 예정이다.
자살예방법 제정으로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실질적인 예산도 많아지리라 예상된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현재의 6개 광역정신보건센터와 시·군자살예방센터, 민간상담기관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핫라인을 운영하고, 자살 사례 관리 및 긴급출동 서비스, 경찰·119와의 연계 구축 등을 통해 위기 대응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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