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자 유가족들의 회한과 고통
죽기 전에 아들딸이 보낸 ‘메시지’… “그때 알았더라면”
따뜻한 한마디 소중…“자살자·유가족도 존중받을 권리 있다”
한해 유가족 9만명 추산 “경쟁·불통 사회가 자살 부추
죽기 전에 아들딸이 보낸 ‘메시지’… “그때 알았더라면”
따뜻한 한마디 소중…“자살자·유가족도 존중받을 권리 있다”
한해 유가족 9만명 추산 “경쟁·불통 사회가 자살 부추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시대. 수많은 목소리가 세상의 데시벨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들리지 않는 외침이 있다. 세상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 절규가 있다. <한겨레>가 여론의 사각지대를 찾아가 그들의 말을 전하는 ‘낮은 목소리’를 시작하는 이유다.
첫번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살’로 고통받는 이들이다. 흔히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타인의 자살 이유는 “○○○ 때문에 우울증을 겪어왔다”는 식의 단문으로 압축된다. 그 과정에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사연과 주변의 아픔은 증발한다. 그렇기에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여지도 사라진다. <한겨레>는 아들과 딸, 친구를 자살로 먼저 떠나보낸 세명의 말 못할 고통을 들어봤다. 그들은 어디에도 아픔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아울러 우울증 때문에 자살 시도를 했다가 지금은 다른 사람의 자살을 막고 있는 한 남성을 통해 자살 위험에 내몰린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보고, 자살 예방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전문가의 의견을 함께 싣는다.
최경희(가명·55)씨는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친구를 떠나보낸 한 남성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픈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년 전 스물여섯 딸은 우울증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딸이 죽기 전날 최씨는 병원에서 에이(A)형 간염에 걸린 아들의 병간호를 하고 있었다. 그날 밤늦게 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딸은 울고 있었다. “엄마… 오늘 꼭 엄마 옆에서 자고 싶어.” 최씨는 간염이 전염된다는 말에 병원에 오려는 딸을 말렸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때 왜 옆에 있어주지 못했을까….’ 딸과 아들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그 순간이 최씨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그 뒤 최씨는 죄인처럼 지내왔다. ‘엄마라는 사람이 딸이 그 정도로 고통받았다는 걸 몰랐다니….’ 깨어 있는 순간은 온통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괴로웠다. 남들의 시선도 두려웠다. “집안에 얼마나 문제가 많았으면 그랬겠어.” 남들의 수군거림과 싸늘한 눈초리를 견디기 힘들었다.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할 용기가 없어 숨었다. 딸의 자살을 차마 밝힐 수 없어 몇몇 지인들에게는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했다. 거리에서 파는 액세서리만 봐도 멋쟁이였던 딸의 얼굴이 떠올라 괴로웠다. 교회를 갈 때 아니고는 밖에 나가지 않았다. 집에서는 내내 종교방송만 봤다. 주변에 사람은 있었지만 괴로움을 털어놓을 상대는 없었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자살 유가족의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저기 나가볼까.’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웠다. 몇번이나 수화기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용기를 냈다.
지난 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이화동 ‘한국생명의전화’에서 자살자 유가족의 자조모임이 열렸다. 최씨는 두달 전부터 여기에 나온다. 이곳은 가족을 자살로 떠나보낸 사람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들은 매주 한번씩 만나 일주일간 어떻게 지냈는지, 기분은 어떤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얘기를 하다 보면 고통도 누그러진다. 최씨는 “내 속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한달 전 절친한 친구를 떠나보낸 이성환(가명·55)씨가 지난주부터 모임에 함께했다. 사업이 어려워져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했던 친구는 자살 사흘 전 그를 찾아왔다. 친구는 죽기 직전까지 그와 함께 지냈다. 이씨 역시 사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터라, 둘은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죽으려면 이런저런 정리를 해야겠지”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친구가 불현듯 말했다. “죽는데 꼭 주변정리가 필요할까.” 이씨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친구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날 이씨는 친구의 아내로부터 친구의 부고를 들었다.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친구의 장례를 치른 뒤에도 그는 지금껏 잠을 이루지 못해 매일 수면제를 먹고 있다.
2년 전 대학생 아들을 잃은 김영숙(가명·57)씨 역시 지금까지도 어둠을 견디지 못해 불을 켜고 잔다. 아들은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기 전날 밤, 자신에게 영화 <매트릭스>를 같이 보자고 했다. 김씨는 피곤해서 들어주지 못했다. 평소 아들이 우울증을 앓는 걸 알고 있었고 치료를 위해 노력했지만, 우울증을 감기처럼 지나가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걸 후회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4월부터 자살 시도자와 유가족을 상담하는 일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아픔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좌절이 찾아왔다. 자신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기사를 죽은 아이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엄마에게 보여줬다. 그 엄마는 제목만 보더니 관심 없는 듯 종이를 덮어버렸다. 우울증을 앓은 아들을 마치 정신병 환자인 것처럼 간주했다. 김씨는 “우리 가족과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듯한 느낌을 받아 더는 말을 못했다”며 “또다시 마음이 닫혀버린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살자 가족을 위로하는 법을 모른다.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나쁜 놈! 부모를 놔두고 먼저 가다니” “잊어버려라. 시간이 약이다”…. 쉽게 던진 ‘위로’의 말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화살이 되어 심장에 박힌다. 최씨는 자식을 보낸 지 2년이 흘렀다고 “이제 괜찮아졌지?”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너무 밉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너는 자식을 잊을 수 있겠니’라고 수없이 반문한다. 최씨가 듣고 싶은 말은 하나뿐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니.”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유가족들은 어둠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다. 그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이 보기에 세상은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자살을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살자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린다. 한때 독일에서 살았던 이성환씨는 “서양인들은 타인에게 조금만 이상한 증세가 보이면 바로 공공기관에 알릴 정도로 관심을 갖지만, 정이 많다는 한국인이 오히려 더 개인적이다”라고 한다. 그는 “경쟁이 심한 분위기 탓인지 서로 극단적으로만 치닫고 소통이 없다”며 “조금만 남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상담하는 김영숙씨도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생명존중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자살자나 자살자 유가족들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며 “세상 사람들이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도록 사회적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2009년 자살자 수는 1만5413명이다. 1명의 자살에 직접적인 정신적 영향을 받는 가족·친지가 6명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자살자 유가족’은 연간 약 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역시 ‘자살 위험군’이다. 최경희씨나 이성환씨, 김영숙씨는 그래도 아픔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사람들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자살자 유가족들이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으로 삭이며 살아간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한겨레 인기기사> ■ ‘사장님차’ 그랜저, 이젠 30대가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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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학생 아들을 잃은 김영숙(가명·57)씨 역시 지금까지도 어둠을 견디지 못해 불을 켜고 잔다. 아들은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기 전날 밤, 자신에게 영화 <매트릭스>를 같이 보자고 했다. 김씨는 피곤해서 들어주지 못했다. 평소 아들이 우울증을 앓는 걸 알고 있었고 치료를 위해 노력했지만, 우울증을 감기처럼 지나가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걸 후회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4월부터 자살 시도자와 유가족을 상담하는 일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아픔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좌절이 찾아왔다. 자신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기사를 죽은 아이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엄마에게 보여줬다. 그 엄마는 제목만 보더니 관심 없는 듯 종이를 덮어버렸다. 우울증을 앓은 아들을 마치 정신병 환자인 것처럼 간주했다. 김씨는 “우리 가족과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듯한 느낌을 받아 더는 말을 못했다”며 “또다시 마음이 닫혀버린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살자 가족을 위로하는 법을 모른다.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나쁜 놈! 부모를 놔두고 먼저 가다니” “잊어버려라. 시간이 약이다”…. 쉽게 던진 ‘위로’의 말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화살이 되어 심장에 박힌다. 최씨는 자식을 보낸 지 2년이 흘렀다고 “이제 괜찮아졌지?”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너무 밉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너는 자식을 잊을 수 있겠니’라고 수없이 반문한다. 최씨가 듣고 싶은 말은 하나뿐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니.”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유가족들은 어둠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다. 그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이 보기에 세상은 여전히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자살을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살자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린다. 한때 독일에서 살았던 이성환씨는 “서양인들은 타인에게 조금만 이상한 증세가 보이면 바로 공공기관에 알릴 정도로 관심을 갖지만, 정이 많다는 한국인이 오히려 더 개인적이다”라고 한다. 그는 “경쟁이 심한 분위기 탓인지 서로 극단적으로만 치닫고 소통이 없다”며 “조금만 남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상담하는 김영숙씨도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생명존중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자살자나 자살자 유가족들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며 “세상 사람들이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도록 사회적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2009년 자살자 수는 1만5413명이다. 1명의 자살에 직접적인 정신적 영향을 받는 가족·친지가 6명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자살자 유가족’은 연간 약 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역시 ‘자살 위험군’이다. 최경희씨나 이성환씨, 김영숙씨는 그래도 아픔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사람들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자살자 유가족들이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으로 삭이며 살아간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한겨레 인기기사> ■ ‘사장님차’ 그랜저, 이젠 30대가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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