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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검찰의 ‘위험한’ 승리 / 김이택

등록 2011-06-14 19:10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여론조사는 중수부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검찰에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검찰개혁은 물건너가는가 보다.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이달로 끝내고 남은 쟁점은 법사위에서 계속 논의한다지만 합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결사적으로 반대해온 검찰이 최대의 승자가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검찰의 영악한 두뇌플레이에 국회가 당한 꼴이 됐다. 검찰의 빛나는 한 수는 바로 중수부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투입이다. 사개특위 6인소위가 비밀리에 중수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신설을 뼈대로 하는 합의안을 만들 무렵인 3월 초 검찰은 중수부에 돌연 부산저축은행 상황관리팀을 꾸렸다고 한다. 3월10일 6인소위가 중수부 폐지 등 20개 합의사항을 발표하자, 중수부는 닷새 뒤 부산저축은행 5개 계열사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으로 수사에 뛰어들었다.

이후 석달간 사개특위와 검찰 사이에 공방이 계속됐지만 결국 “부산저축은행 수사는 어쩌려고 중수부를 폐지하느냐” “해병대가 상륙작전 하는데 부대를 해체하면 어떡하느냐”는 억지 논리 앞에 폐지론은 힘을 못 썼다. 저축은행 수사가 끝난 뒤에 없애면 되고, 특수청 등 다른 대안을 만들면 된다는 반론은 묻혔다. 저축은행 피해자 아주머니들이 대검까지 찾아와 “중수부 폐지 반대”를 외치는 장면은 검찰이 이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는 증표였다.

‘정치인 수사’ 카드도 검찰에 훌륭한 무기가 돼주었다. 어느 시점부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정치인들의 이니셜과 실명은 “정치인 수사 한다니까 의원들이 중수부 없애려는 거 아니냐”는 방어 논리의 좋은 근거자료로 활용됐다.

우리 정치사에서 거대권력화한 검찰에 대한 견제 시도는 2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3대 국회에서 평민당이 특별검사제 법안을 낸 것을 시작으로 역대 국회마다 검찰의 정치 중립과 권한 분산을 겨냥한 법안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17대 총선에선 여야 모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놨지만 정작 국회가 열리자 어디에 두고, 어떤 권한을 주느냐는 문제로 입씨름하다 무산됐다. 재밌는 것은 노무현 정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정부가 야당 시절 검찰 중립을 주장하다 정권을 잡은 뒤에는 공통적으로 말을 바꿨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검찰이 정권의 비위를 잘 맞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 놓고는 임기 말이나, 정권이 바뀌기 무섭게 모두 검찰에 당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우리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과 수사종결권, 기소 여부를 맘대로 결정하는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권에다 자체 수사력까지 가진 나라는 세계에 아무 데도 없다. 문명국 가운데 검사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헌법에 박아놓은 나라도 우리뿐이다.

민주화 이후 법치가 강조되면서 검찰은 가장 막강한 권력기관이 됐다. 그런데도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정권에 부역해온 얼룩진 과거를 한번도 반성하거나 청산하지 않았다. 국정원과 경찰은 물론 법원까지 ‘과거’를 사과했으나 검찰은 그러지 않았다. “항해가 잘못되면 선장이 책임지면 된다”는 말을 자랑스레 내세웠다. 결국 권력만 쳐다보는 나쁜 버릇을 스스로 고칠 기회를 잃은 것이다.

중수부가 뛰어든 부산저축은행 수사는 양날의 칼이다. ‘거악 척결’을 외쳐놓고 정권 핵심부를 둘러싼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면 중수부의 존재 의미를 인정받기 어렵다. 그렇다고 중수부 존립에 손을 들어준 청와대까지 겨냥해 과연 성역 없이 파헤칠 수 있을까.


여러 여론조사 결과는 여전히 국민들이 3 대 1 내지 4 대 1 정도로 중수부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검찰이 이겼다고 만세 부르다간 자칫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위험한 승리다.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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