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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낮은목소리] 빚을 내서라도 대학 가려는 전문계고 아이들 / 이성주

등록 2011-06-23 19:35

이성주 서울공업고 교사
이성주 서울공업고 교사
지난달 엘지디스플레이 생산직에 합격해 9월부터 경기도 파주 공장에서 일하게 된 학생이 있다. 휴대전화·텔레비전 등에 쓰이는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쪽 일을 맡는다. 컴퓨터를 보면서 화면을 조작하는 일이라고 한다. 연봉은 각종 수당과 성과급 등을 다 합치면 2900만원 정도 된다. 1학년 때부터 뷔페·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해왔기에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고 한다. 그 학생은 원래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해 관련된 학과에 입학했지만 결국 전공과 다른 일을 택했다. 그러나 취직했다고 고민이 끝난 건 아니다. 그 학생은 2~3년만 일한 뒤 대학을 가려고 한다. 친구들이 다 가는 대학을 자신도 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학생의 말대로, 전문계고 학생들의 상당수는 대학을 가려고 한다. 일부 학생은 동일계 특별전형을 통해 수도권 4년제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본인의 성적과 가정 형편을 고려해 전문대학에 가려 한다. 이 때문에 필자는 전문계고 교사로서의 고민이 늘어가고 있다.

전문계고 학생들이 왜 빚을 내서라도 대학을 다니려고 하는가? 그렇게라도 대학을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대학 등록금이 살인적으로 비싸면서도 고학력자가 양산되고 있다. 반면 산업현장에서 성장을 주도하는 전문 기술인력은 오히려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대학 진학 열풍이 수그러들지 않는 건 우리나라가 여전히 학력·학벌주의에 사로잡힌 사회라는 것을 반증한다.

학력·학벌주의는 졸업 후 관련분야 산업체 취업을 주된 기능으로 하는 특성화고(전문계고) 교육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20일 공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회정책보고서’는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의 취업률이 떨어지는 상황을 지적하고, 직업학교에서 노동시장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산업계가 이런 프로그램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권고사항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거시적으로는 학력 신화에 빠져 학력에 따라 임금 기준을 달리하는 모순된 체제,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인식, 무조건적으로 명문대에 많이 보내야 좋은 학교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일부 교사들의 생각, 시장주의적인 논리에 입각한 나머지 일자리 불일치(Job-mismatch), 기술 불일치(Skill-mismatch) 문제 해결에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는 정부의 직업교육 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업자들의 평균 연봉이 1700만원이고 저소득층 학생 비율이 45%인 본교의 경우, 학생 본인의 소질·적성·능력과 집안 형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을 해야 하는 학생이 많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 입학 정원이 비슷하고 과잉 배출된 대졸자가 하향 취업하는 것이 대세인 상황에서, 특성화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려면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 돼버렸다. 또 용기와 결단을 내려 취업을 하려고 할 때 학생들이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는 본인의 전공과 관계가 없지만 연봉을 많이 주는 대기업 전자분야 생산직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은 연봉이 적더라도 전공을 살려 취업한 뒤 경력을 쌓아 해당 분야 전문가로 성장할 것인가이다.

최근 반값 등록금 문제가 이슈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특성화고 학생의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오이시디 사회정책보고서의 권고사항처럼 노동시장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산업계가 이런 프로그램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산·학·관 협력 체계를 활성화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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