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황호 한국직업교육단체연합회 상임대표·인하대 교수
직업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산업기초인력을 양성하는 데 실업계 고교의 역할이 컸다. 직업교육의 중심축을 담당했던 실업계 고교의 명칭이 전문계 고교로 바뀌고, 또다시 특성화 고교 및 마이스터 고교로 그 명칭이 변경되면서 고교 단계에서의 직업교육은 평생 전문직업을 준비하는 단계로서의 의미가 뚜렷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문대학으로 직업교육의 중심축이 이동되면서 고교 단계에서의 직업교육은 취업보다는 대학 진학으로 목표를 잡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직업교육의 목표를 바로잡는 것이 국가의 직업교육 정책의 과제가 되고 있다.
직업교육이 사는 길은 첫째, 학력 간 임금 격차, 입사시험에서의 학력 제한, 불합리한 승진 제도 등을 전향적으로 개선하는 데 있다. 학력의 차이가 다른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는 사회구조가 아닌, 능력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국민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 역할을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 예컨대 직업교육진흥특별법을 제정하여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학력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전문 직업교육을 통한 평생직업교육 체계를 확립하도록 하며,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 국가직업교육진흥위원회를 두어 국가의 직업교육정책을 수립·심의하는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학력 간 임금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이다. 학력에 따른 차별을 없애지 않고서는 학력 인플레로 인한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고교 단계에서든 고등교육 단계에서든 직업교육 과정을 이수한 졸업자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체계를 유지하도록 국가가 산업체에 지도·권장하도록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고용촉진법에서, 독일은 직업교육촉진법에서 이를 명문화함으로써 아예 학력 간 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직업교육을 위한 산·학·관 협력체제를 확립하여 한층 더 강제성이 주어진 실무 중심의 현장 교육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확립해야 한다. 아일랜드나 핀란드에서 직업교육이 성공하고 있는 것은 산·학·관 협력을 법으로 규정하고 국가가 산업체에 강제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고교 단계에서의 직업교육이 전문인력 양성으로 연계되기 위해서는 고교 단계에서 직업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이 대학 과정에서도 심화학습을 할 수 있도록 대학의 전문 직업교육 교과과정 개발과 운영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마이스터 양성제도는 그 좋은 예이다. 중학교 과정부터 직업교육 과정을 운영하여 심화된 직업교육을 통해 직업전문인력인 마이스터를 국가가 책임지고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마이스터 고교가 대학 진학을 위한 또다른 명문 특성화고로 전락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끝으로 대학에서 직업교육을 성공시키려면 영국·핀란드 등의 폴리테크닉(Polytechnic)이나 독일의 파흐혹슐레(Fachhochschule)와 같이 다양한 직업 과정을 운영하여 고등직업교육 체계를 선진화하고 세계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국가자격능력인증 체제를 구축하여 세계적 기술자격표준에 따른 직업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직업교육 과정의 선진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보장이 있을 때 비로소 직업교육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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