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 칼럼니스트
여럿이 “외로웠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가장 근사한,
아니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책을 읽는 가장 근사한,
아니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오랜 월급쟁이 노릇으로 생긴 생활습관 중 하나는 금요일 밤에 관한 것이다. 일주일을 대과 없이 보낸 자신이 대견해서일까. 뭔가 먹고 마시는 게 금요일 밤의 주요 일정이었다. 직장생활에서 풀려난 뒤에도 이 습성은 왠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덜컥 만난 게 ‘책 낭송하는 금요일’이다. 일주일에 한 권씩 고전을 읽고 금요일 밤에 모인다. 제각기 한 구절씩 소리 내어 읽고, 그 대목에 왜 꽂혔는지를 발표하는 형식이다. 지도강사님의 코멘트가 따른다. 저녁 7시30분에 시작해 거의 세 시간이 넘게 계속된다. 끝까지 단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30여명. 거의 모두 여성이며 20대부터 50대까지다. 퇴근하고 달려온 직장여성들이 주류다. 주부들도 간간이 있다. 50대 후반인 나는 즉각 최고령 학생으로 등극한다.
첫날 교재는 18세기 조선 정조 때 학자 이덕무의 산문집 <책에 미친 바보>다. 한글 번역본이긴 하지만 선비로서 그가 쓴 글과 생각뿐 아니라 생애와 시대 배경까지 그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한 권에 담겨 있다. 책읽기를 태생적으로 좋아했던 한 인간, 그가 함께했던 연암 박지원 그룹 회원들과의 뜨거운 우정에 모두들 경의를 표한다. “근심걱정이 많을 때, 그리고 기침이 심할 때일수록 책을 읽는다”는 구절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이건 도저히 따라 하기 어렵다. 일부는 생활력 약한 선비인 그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나보다 214년 앞서서 이 땅에 태어난 이덕무를 일찍이 이토록 열렬히 토론한 민간인 여성 집단이 있었을까. 언제나 그를 따라다닌 가난을 평생 동지로 삼아버린 그의 스타일, 어쩔 수 없이 조선시대 남성이기에 아내에 대한 글을 별로 남기지 않은 점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이덕무 선생이 살아 돌아왔다면 졸도할 판이다. 서로의 발표에 대한 논평이나 이견도 적극 권장된다. 모임의 열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우리 모두 책을 눈으로만 읽어온 지 오래다. 그런데 모여서 낭송하는 것은 눈으로 읽기와 다르다. 글맛이 확 느껴진다. 한번 해보면 누구나 알게 된다. “소리의 공명을 통해 다른 이들과 접속한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한다. 근데 진짜 놀라운 건 금요일 밤 야간학교에 자율학습 하러 모여든 여성들이다. 무엇이 그녀들을 퇴근 후 친구들과의 맥주 한 잔으로부터 이리로 불러낸 것일까? 자기소개를 할 때 여럿이 “외로웠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가장 근사한, 아니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음주가무 없이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책 낭송하는 금요일’을 찾아왔다는 그녀들. 그래서 낮에 일하고 밤에 책을 읽는 주경야독의 공동체가 만들어진 거다. 같은 글을 읽어도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각자 살아온 이력을 배경으로 이해하게 되니 서로의 해석에서 배우게 된다. 거기다 “기질적으로 맘에 드는 구절만을 취할 게 아니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을 텍스트로 삼아 지금의 나를 흔들 수 있는 경험을 가져보라”는 지도강사님의 조언이 날아온다. 감동이다.
오로지 책만 읽었던 선비 이덕무와 달리 ‘낭금’ 회원들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생활인들이다.
모두들 가난을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포위된 지금 여기를 산다. 이덕무를 읽는다고 해서 가난을 좋은 친구로 삼기는 무리다. 그럼에도 이덕무를 읽으며 우리는 세속의 성공과 가난, 이 두 가지를 굳이 적대시하지 않는 자세를 갖게 되는 것 아닐까? 그 둘 사이의 균형감각과 태연함이 바로 이 시대를 사는 파트타임 여성 선비들의 풍모일지도 모른다. 금요일 밤을 보내는 전혀 다른 방법을 찾아낸 여성들. 책 읽는 그녀들의 옆모습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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