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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낮은목소리] “글 가르치는 건 국어교육 아닌 시민교육입니다”

등록 2011-07-21 19:32

김종천 전국문해교육협의회 대표
김종천 전국문해교육협의회 대표
김종천 전국문해교육협의회 대표 인터뷰
성인 25%가 초등 6년 수준 안돼
1000여곳 중 360곳에 정부 지원
아동 대상 교육방식 고수 아쉬워
1980년대 후반 유네스코는 ‘문화를 이해하고 직업생활 등 적응에 있어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의사소통능력’을 ‘문해’(文解)의 개념으로 정의하면서, 전세계에 비문해자가 9억명이 있고 그중 80%가 아시아에 몰려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문맹은 거의 없다”고만 인식했던 우리나라에서도 문해교육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수십년간 주민에게 한글을 가르쳐온 교육단체들은 본격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1999년 ‘전국문해교육협의회’를 만들었다. 20년간 충북 제천시에서 문해교육을 해온 김종천(51·사진) 전국문해교육협의회 대표를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평생교육진흥원에서 만나, 우리나라 문해교육의 현황에 대해 들어봤다.

-‘문해교육’이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예전에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까막눈’, ‘글장님’이라는 다소 비하적인 말로 불렀다. 1980년대 후반부터 유네스코의 영향을 받아 문해(literacy), 비문해(illiteracy)로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사회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과 의무교육 수준의 기초 학습능력을 확보하는 걸 문해교육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비문해자는 얼마나 되나?

“한국교육개발원이 2002년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문자해독 능력이 안 되는 성인이 조사 대상의 24.8%에 이르렀다. 성인 4명 중 1명이 비문해자인 것이다. 특히 이 중 8.4%는 글자를 아예 모르는 ‘완전 비문해자’로 나타났다.”

-이들이 글을 배우지 못한 이유는?

“비문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인데, 전쟁과 가난이 주요 이유다. 또 여자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적 차별이 있었던 것도 원인이다. 그 외에 건강 등의 이유로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경우나 학교를 다니다가 탈락하는 경우 등이다.”

-늦게라도 글을 배우려는 이유는?


“문해 학습자들에게 왜 글을 배우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1차 욕구는 편지를 쓰거나 은행에서 업무를 보거나 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다음에 무얼 할 거냐고 물으면, 손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친구들과 약속을 정하고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다고 한다. 또 그다음에 뭘 할 거냐고 물으면, 자기 인생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 그다음은 무얼 할 거냐고 계속 물어본다. 그러면 그분들이 궁극적으로 대답하는 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말이다. 이분들은 글에 대한 자신이 없으니, 일상생활에서도 대화에 깊이 참여하지 못하고 겉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실성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외롭고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정부의 문해교육 정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2004년 비문해자 600명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학습권 보장을 위한 궐기대회’를 했다. 그게 시발점이 되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원이 시작됐다. 2007년에 문해교육 교재를 만들었고, 2008년에는 평생교육진흥원에서 문해교육사를 양성하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문해교육기관은 360곳이다. 비공식 기관까지 합하면 1000여곳이 된다. 아쉬운 점은, 평생교육센터나 초·중학교 등 기존의 교사나 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문해교육을 하려고 하는 정부의 접근법이다. 성인 학습자와 아동 학습자는 교육방식이 완전히 달라야 한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는 자세로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려고 하고 주입식으로 가르치면 비문해자들은 오히려 상처받는다. 그분들이 스스로 학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문해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문자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생의 3분의 1밖에 살지 못한다.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사는 게 중요하다. 문해교육은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글자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다. 배우면 내가 좋고 가족이 좋고 사회가 좋아진다. 비문해자 스스로도 자신이 사회의 ‘부채’인 존재로 여겼다가 ‘자산’이라고 느낄 수 있다. ‘주변인’에서 ‘주인’이 되는 것이다. 문해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민교육이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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