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시구의 내용이나 효과가 아니라
시가 여자의 나체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오직 그를 분노하게 했다
시가 여자의 나체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오직 그를 분노하게 했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 초판(1857)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 프랑스 검찰은 공공 풍기 문란죄로 저자를 기소하였다. 보들레르는 이 소송에서 패하여 당시로서는 큰돈인 300프랑의 벌금을 내야 했고, 시집에서 여섯편의 시를 삭제해야 했다. 말이 여섯편이지, 시집에서 문제의 시가 실린 페이지를 잘라내게 되면 그 뒷면에 인쇄된 시도 무사할 수 없으니 훨씬 더 많은 시편이 참화를 입었다.
그 여섯편의 시 가운데 ‘레테’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레테는 알다시피 그 물을 한 모금만 마시면 이승의 기억을 잃게 된다는 저승 입구의 강이다. <악의 꽃> 초판 전체에서 가장 선정적인 시구가 이 시에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너의 체취 가득 밴 네 치마에/ 고통스런 내 머리를 묻고/ 죽은 내 사랑의 달콤한 군내를/ 시든 꽃처럼 들이마시고 싶다.” 그러나 이 시가 처벌을 받은 것은 이 시구 때문이 아니었다. 검사가 정작 문제로 삼은 것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구절이었다. “내 원한을 빠뜨려 죽이기 위해/ 심장 하나 담아본 적 없는/ 네 날카로운 젖가슴의 뾰쪽한 끝에서/ 효험 좋은 독즙을 빨리라.” 이 시구에 나오는 여자의 젖가슴은 여자가 옷을 벗었다는 정황을 말해준다. 검사에게 중요한 것은 시구에 담긴 내용이나 그 효과가 아니었다. 시가 여자의 나체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오직 그를 분노하게 했다.
검사가 시의 맥락을 따졌더라면 여자의 젖가슴보다는 체취 밴 여자의 치마와 거기에 제 얼굴을 묻는 남자를 더 위험하게 여겼을 것이다. 아니 그가 맥락을 더 깊이 따졌더라면, 그는 이 시에서 음란한 한 남자를 보기보다는 제 상처 많은 기억을 잊기 위해 높은 흥분 상태에서 제정신을 마비시키려는 고뇌에 찬 한 남자를 보았을 것이다. 맥락을 따질 마음의 여유나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 검사로서는 잘된 일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런 여유나 능력이 있었더라면 그 남자를 기소하려 하기보다 그 고뇌에 한 가닥이라도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누리꾼이 남자의 성기 사진 일곱 장을 자기 블로그에 올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 사진들을 음란물로 규정해 삭제 조처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반대의견을 개진했던 박경신 심의위원이 이 사진들을 자기 블로그에 올리고, ‘어떤 서사도 포함하지 않은 성기 이미지들이 그 자체로 음란물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박 위원이 서사를 말하는 것은 그 맥락을 따지자는 뜻이다. 인터넷 사이트 어디에나 널려 있는, 그렇다고 크게 문제될 것도 없는 “여성이 만족하는 남성의 사이즈?” 같은 광고의 말과 이 사진들을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음란한지 알아보자는 뜻도 어쩌면 포함되겠다.
그러나 박 위원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지 않다. 사람살이의 속내가 어떤 것이며,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진중하게 살펴보려는 노력들은 쉽게 나타나지 않고, 그가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식으로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이 일과는 관계없는 국적 문제로 그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맥락을 따지자는 말의 맥락까지 묻혀버릴 판이다.
맥락을 따진다는 것은 사람과 그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맥락 뒤에는 또다른 맥락이 있다. 이렇듯 삶의 깊이가 거기 있기에 맥락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일에 시간과 정성을 바치기보다는 행정 규정을 폭력적으로 들이미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한국을 이상사회로 생각한다는 노르웨이의 한 청년이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깊이 살피기보다 제가 생각한 세계와 맞지 않는 것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려 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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