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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홍준표·스핀닥터·민주주의

등록 2011-08-01 19:09수정 2011-08-01 19:13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스핀’이란 조작이자 기만이다
그 말의 뜻을 아는 입장에서는
“여론조작 맡아달라”로 들린다
1. 2008년 12월9일. 한나라당 홍준표 신임 원내대표는 이름도 생소한 ‘스핀닥터’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하고, 한선교 홍보기획본부장을 임명했다.

2. 2011년 7월22일. 한나라당 홍준표 신임 대표는 ‘부자정당’ 등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최구식 홍보기획본부장에게 ‘스핀닥터’ 역할을 맡긴다고 발표했다. 그는 “야당의 공격을 방어하고 역공까지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친절히 임무를 설명했다.

그는 과연 ‘스핀닥터’의 뜻을 제대로 알고 쓴 것일까? 홍보를 전공하고, 글로벌 홍보 컨설팅사에서 일했으며, 대학에서 홍보를 가르쳐온 필자로서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3. 2007년 2월28일. 일본의 <재팬 타임스>는 현재 글로벌 홍보 컨설팅사인 버슨 마스텔러의 로버트 피커드 아태지역 사장이 쓴 편지를 실었다. 그는 <재팬 타임스>가 기사에서 홍보를 가리켜 ‘스핀’이란 용어를 쓴 것과 관련해 “스핀이란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대중을 속이고 기만하는 활동”이라고 지적하면서, 홍보를 스핀이라 말하는 것은 기자들을 ‘푼돈 받고 저질 기사를 써내는 사람’이라고 혹평하는 것과 같다고 항의했다.

4. 1998년 6월1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칼럼에서 홍보 컨설턴트 로버트 딜런슈나이더는 “홍보를 스핀이라 말하는 것은 예술을 포르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썼다.

5. <스핀 컨트롤>이란 책을 쓴 미국 조지아대 정치학과 존 앤서니 몰티즈 교수는 스핀이란 이익을 위해 사실을 ‘조작’하거나 ‘비트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에는 정치 커뮤니케이션 석학인 랜스 베넷이나 미국의 홍보 교과서 중 하나인 <디스 이즈 피아르>(This is PR) 모두 같은 시각을 보인다. 미국의 홍보백과사전은 ‘스핀닥터’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싣고는 있지만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스핀닥터’는 정치 홍보 전문가를 지칭하는 것은 맞지만, 언론이 이들의 거짓과 기만적 활동을 비판하는 시각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사실에 기반하여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메시지를 만드는 ‘프레임’이라는 용어와는 달리, 목적 달성을 위해 거짓말로 시민을 기만한다는 의미에서 ‘스핀’은 구별된다. 필자의 멘토인 글로벌 홍보 컨설팅사 에델만의 아태지역 회장을 지낸 데이비드 차드는 내게 “절대로 누군가의 스핀닥터가 되지 말라”고 충고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런 부정적 평가에 홍보인의 책임이 크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홍보에도 부끄러운 과거와 현재가 있기 때문이다. 홍보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담배를 여성에게 촉진하기 위해 ‘스핀’활동을 했으며, 지금도 정치나 비즈니스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스핀’ 활동은 종종 목격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홍보인의 윤리헌장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스핀과 유사한 부정적 의미의 용어에는 프로파간다(선전)가 있으며, <여론조작>을 쓴 노엄 촘스키나 <스핀닥터>를 쓴 윌리엄 디난 교수 등은 스핀이나 프로파간다가 ‘가진 자’들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최근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가진 자들’의 ‘언론 플레이’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홍보분야 종사자들이 귀기울여야 할 비판이기도 하다.

홍준표 대표가 “스핀닥터를 맡아주시오”라고 부탁하는 모습은 이 용어의 뜻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앞으로 여론 조작을 맡아주시오”라고 들린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가 용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거나, 아니면 ‘너무’ 솔직하거나.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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