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논설위원
한-미 FTA의 손익계산서는
어차피 분식투성이
국민주권의 관점으로 재검증해야
어차피 분식투성이
국민주권의 관점으로 재검증해야
국가 이익의 균형. 두 나라가 서로 주고받기를 해서 똑같은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익을 맞췄는지 설명하려면 우선 한쪽의 이익부터 계산해봐야 한다. 그런데 셈법 자체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는 지난 5일 국책연구기관 10곳이 공동으로 작업한 협정의 경제적 효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장밋빛이다. ‘연산가능일반균형모형’(CGE)이라는, 요술방망이 같은 계산방식을 이용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추정했더니 단기에는 0.02%, 중장기적으로는 0.48~5.66% 증가하는 효과가 나왔다고 했다. 고용은 단기적으로는 4300명, 장기간에 걸쳐서는 35만명 증가를 예상했다.
여기서 단기와 장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상식의 눈’으로 보기엔 뜨악하다. 단기 분석은 순수하게 협정에 따른 양국의 시장장벽 해소를 반영한 것인데, 중장기 기대치는 일방적 가정을 전제로 나온 수치다. 시장개방으로 경쟁이 심해지면 경제주체들의 경쟁력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미국의 좋은 기술과 경영기법이 들어오고, 선진 제도가 국내 정착되고 등등 해서 경제 각 부문의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가정한다. 구체적으로는 ‘제조업은 1.2%, 서비스업은 1% 생산성 증가’라는 ‘외부 충격(쇼크)’을 줘서 기계적 모형으로 장기 효과를 분석했다. 이런 분석을 거칠게 풀이하면, 생산이 증가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생산이 증가한다는 결론을 낸 꼴이다.
국책연구기관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정부의 ‘청부용역’일 가능성이 크다. 민간에선 다르게 본다. 계량경제학을 전공한 신범철 경기대 교수는 미 무역대표부(USTR)가 이용하는 표준모형을 적용해 총생산 증가 효과를 산출했더니 0.2~0.31%에 그쳤다고 한다. 국내 농축산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다. 미국 농무부는 협정 발효 뒤 한국 시장으로의 농축산물 수출이 연평균 19억3300만달러(2조1000여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데, 우리 농식품부가 추정한 연평균 수입증가액은 4억2400만달러다. 무려 4.2배나 차이 난다. 둘 중 하나는 계산이 틀린 셈이다. 이처럼 경제적 효과 분석은 어차피 희망사항이다. 경제적 기대효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득실을 따지는 것은 공허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작 중요한 논점은 다른 데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채택 여부다.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관세장벽의 제거보다는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06년 초에 나온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그렇게 돼 있다. 협상에선 대체로 미국의 뜻이 관철됐다. 협정문에는 우리나라 법 체계나 관행에 비춰 생소한 조항들이 가득하다. 특히 투자·서비스·지적재산권 분야가 그렇다. 더구나 이들 분야에서는 권리와 의무의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
예컨대 협정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이나 투자자가 미국에서 보장받는 권리는 미국의 현행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비해 미국 투자자와 기업들한테 보장해주는 권리는 헌법 질서를 위협할 정도다. 미국은 협정과 충돌하는 현행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나라는 바꿔야 할 법률이 정부가 파악한 것만 약 30가지에 이른다. 협정이 발효되면 헌법에 명시된 사회적 기본권이나 경제 민주화를 위한 국가기관의 규제권 등은 사실상 무력화할 소지가 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국식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이 선진화이며 국제표준인 만큼 협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확신하는 이들이 많다. 과연 그런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고 한다. 그들에겐 세계경제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금 미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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