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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가게무샤와 커닝 그리고 연습

등록 2011-08-22 18:51수정 2011-08-22 22:49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검찰총장·한진중 청문회로 인해
리더들의 진정한 소통 ‘연습’이
오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 8월4일.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지원 의원은 서두에 한 컨설팅사 이름을 대며 후보자가 모의 청문회를 했는지 물었다. 한 총장은 당황했고, 그 컨설팅사 대표가 박영선 의원의 ‘가게무샤’(일어로 ‘대역’을 뜻함) 역할을 했는지 확인하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지난 8월18일 밤 10시께. 한진중공업 청문회장이 시끄러워졌다. ‘지루할 정도로 느리고 다소 어눌하게, 호소하는 어투로’ 등이 적힌 ‘청문회 대비 문건’을 조남호 회장이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정동영 의원은 커닝페이퍼로 국민을 우롱한다고 다그쳤지만, 조 회장은 침묵했다.

 한발 물러나 생각해보자. 만약 청문회에서 증인이 성실한 태도로 사실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는다면 모의 연습 여부나 문건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혹자는 사실만 말하면 되지 연습이 왜 필요한가라고 묻지만, 이는 ‘순진한’ 이야기다.

 나는 커뮤니케이션 코치로서 평소 리더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사전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부탁을 해보자. “제발 코끼리를 상상하지 말아달라.” 이 부탁을 들으며 여러분은 코끼리를 상상하지 않았는가? 인간의 뇌는 무엇을 상상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을 오히려 상상하게 되어 있다. 대표적인 진보주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 프레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1. 2006년 2월28일. 국회 대정부질문 마지막 날.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를 향해 “(법조)브로커 (윤상림씨)하고 놀아난 것 아니냐”고 몰아붙이며 “나는 총리처럼 브로커하고 놀아나지 않았다”고 연타를 날렸다. 이때 흥분한 이 총리는 “인신모욕하지 마시라, 누가 브로커하고 놀아났느냐. 언제 놀아났어요”라고 답했다.

 잠시 조지 레이코프를 ‘컨설턴트’로 모셔와 보자. 이 총리는 홍 의원의 전술에 말려들어갔다. 코끼리를 상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하듯이, ‘브로커’나 ‘놀아났다’는 말을 이 총리가 반복하며 부정하게 되면, 이는 더 국민들의 인상에 남게 된다. 즉, ‘이 총리’와 ‘브로커’를 더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다. 그가 정말 ‘브로커’와 관계가 없었고, ‘놀아난’ 적이 없었다면 그는 그냥 “그런 적이 없다”고 답하고 윤씨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다른 프레임에서 이야기했어야 한다.

 2. 2008년 5월6일 심재철 당시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는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에스아르엠(SRM·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면 광우병에 걸린 소로 만든 등심 스테이크는 먹어도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심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반대로 시민들을 더 불안과 분노로 몰아넣었다.


 이는 1970년대 맥도널드가 미국에서 햄버거에 지렁이가 들어 있다는 터무니없는 악성 루머에 시달릴 때 일부 매장이 ‘우리 햄버거에는 지렁이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라고 써 붙였다가 오히려 매출이 감소한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심 의원은 ‘절대’라는 말을 삭제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그는 ‘광우병에 걸린 소로 만든 등심 스테이크’라는 부정 프레임을 사용하여 안전성을 전달하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 못했다.

 ‘아 하는 것’과 ‘어 하는 것’은 다르다. 더군다나 리더의 ‘아’와 ‘어’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이번 청문회로 인해 리더들이 해야 할 진정한 소통 ‘연습’이 단순한 ‘가게무샤’나 ‘커닝페이퍼’로 오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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