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논설위원
대법원 재판 결과를 기다렸다면
굳이 투표비용 182억원을 들이지 않았을 것
굳이 투표비용 182억원을 들이지 않았을 것
오세훈 제작·각본·주연의 182억원짜리 ‘무상급식 반대 쇼’는 결국 흥행 실패로 막을 내렸다. 대통령 선거 불출마와 서울시장 사퇴 카드까지 동원하며 막판까지 손님을 끌어보려 애썼지만 결국 서울시민들은 그를 외면했다. 아니, 오 시장 스스로 시민들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헛발질을 했다고 봐야 옳다.
무상급식 반대 투표는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무상급식의 주무는 어디까지나 서울시교육청이다. 서울시가 예산을 지원한다지만 애초부터 서울시장이 나서서 자기 거취를 걸 사안은 아니었다.
스스로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조례가 무효라며 대법원에 소송을 걸어놓고도 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다시 주민투표 카드를 동원한 목적은 정치적 욕심이 아니었다면 설명하기 어렵다. 정치권의 ‘복지포퓰리즘’에 저항하는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것만큼 좋은 건수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를 부추긴 청와대와 일부 여당 간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은 이번 무상급식 투표 결과를 망국적 포퓰리즘이 계속되느냐 아니면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길로 갈 수 있느냐를 판단하게 될 중요한 계기로 생각하고 있다”며 대통령을 팔았다. 광복절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치권의 경쟁적인 복지포퓰리즘이 국가부도 사태를 낳은 국가들의 전철을 우리는 밟아서는 안 된다”며 오 시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니 오 시장으로선 이번 일만 잘되면 박근혜의 대항마로 뜨는 건 시간문제라고 김칫국물부터 마시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아이들에게 밥 못 주겠다고 징징 짠 어른’이란 오명과 182억원짜리 투표비용 고지서, 그리고 사퇴를 재촉하는 독촉전화뿐이다. 여당에선 10월에 보궐선거를 치르면 불리하니 사퇴 시기를 미뤄야 한다는 얘기까지 한때 나왔다. 누구 생각인지는 몰라도 편법의 극치요, 잔머리의 결정판이다. 오 시장으로선 두번 죽는 길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주민투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의 결정이 과연 옳았는가 하는 점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 소송의 여러 쟁점 가운데 투표용지 문안에 대한 판단은 아쉬움이 남는다. 주민투표 결과는 강제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만에 하나라도 통과된 뒤의 혼란을 방지하려면 투표 용지의 문안이 정확해야 한다. 서울시의 주장대로, 유권자들이 서울시의 안과 서울시교육청의 안을 놓고 선택하게 한다는 취지라면 두번째 문안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쟁점이 전면 무상급식이냐 선별 무상급식이냐 하는 점인데, 이런 표현은 온데간데없고 엉뚱하게 단계적이란 표현을 서울시의 안에만 붙여놓음으로써 유권자의 착각을 부추긴다는 야당 및 시민단체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법원으로선 투표를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잘못을 바로잡는 절차가 있어야 했다. 이런 하자를 그대로 두고 투표를 강행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182억원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주민투표를 무상급식 포퓰리즘과의 전쟁이라고 대서특필하며 오 시장을 한껏 띄워준 보수언론도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4.0을 해야 한다면서도 굳이 가진 자의 기부나 자선이 아닌, 제도로서의 무상복지는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는 게 자가당착, 시대착오적인 주장은 아닌지 되돌아보길 권한다.
대법원 재판 결과를 기다렸다면 투표비용 182억원을 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오 시장과 그의 들러리를 선 모든 이들이 이 돈을 물어내야 할 사람들이다.
이번 주민투표는 앞날이 창창했던 한 젊은 정치인을 좌초시킨 데 그치지 않는다. 투표 결과를 보고도 여전히 “사실상 오세훈의 승리” 운운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들이야말로 민심의 준엄한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rikim@hani.co.kr
이번 주민투표는 앞날이 창창했던 한 젊은 정치인을 좌초시킨 데 그치지 않는다. 투표 결과를 보고도 여전히 “사실상 오세훈의 승리” 운운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들이야말로 민심의 준엄한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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