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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위기관리의 4P

등록 2011-09-19 19:17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결론은 ‘인재’ 아니면 ‘시스템 부실’
뻔한 위기 이야기의 순환 구조는
해마다 반복된다, 줄일 수 있음에도
역사가 순환하듯, 위기도 반복된다. 반복되는 위기에는 순환하는 이야기 구조가 있다. ‘정전대란’ 역시 그 안에서 돌고 있다. 먼저 어이없는 사고가 터진다. 언론은 육하원칙을 채워간다. 우선 ‘무엇’이, ‘언제,’ ‘어디서’ 벌어졌는지 보도한다. 이어 심층취재를 통해 사건 관련자와 전문가 인터뷰를 한다. ‘왜’ 이런 위기가 발생했고, ‘누가’ 책임자이며, ‘어떻게’ 보상 혹은 개선할지 말한다. 결론은 ‘인재’ 아니면 ‘시스템 부실’이며 관련자는 물러난다. 이런 뻔한 위기 이야기의 순환 구조는 안타깝게도 해마다 반복된다.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해일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제외하면 많은 위기는 ‘예상 가능’하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베이저먼 교수와 컨설턴트인 왓킨스는 위기를 ‘예상 가능한 놀라움’으로 정의했고, 9·11과 엔론사태(미 역사상 최대 회계부정사건)를 그 예로 들었다.

위기관리 컨설팅을 해오면서 나는 네 가지 ‘P’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첫째, ‘매뉴얼’로 대표되는 절차(Process). 위기관리 매뉴얼은 과거 두꺼운 ‘교과서’에서 ‘체크리스트’로 ‘경량화’하고 있다. 위기 때에는 짧은 시간에 사건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빠르고 정확한 조처와 소통을 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간결하게 정리한 것이 매뉴얼이다.

둘째, 가상연습(Practice). 정기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가상연습을 통해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정기적 시뮬레이션을 거치지 않는 매뉴얼은 쓸모가 없다. 매뉴얼은 위기관리의 시작이지만 완성은 아니다.

셋째, 위기 후 학습(Post-crisis review). 자기 조직은 물론 외부에서 발생한 관련 위기를 학습하고 잘된 점과 개선점을 찾아 조처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많은 조직들은 위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되돌아보길 꺼린다. 같은 위기가 반복되는 큰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사람(People). 결국 리더십 문제이다. 앞서 말한 절차, 연습, 학습이 제대로 되느냐 아니냐는 결국 리더에게 달려 있다. 염명천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이 ‘단전’ 조처를 내렸을 때, 과연 지시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까? 단전 조처가 가져올 위험과 파장을 예상한 직원은 없었을까? 더 앞서 매뉴얼을 보며 ‘이건 아닌데…’ 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을까? 늦더위를 접하며 ‘만약 전기 사용량이 갑작스럽게 올라간다면…?’ 하며 걱정한 직원은 없었을까?

제대로 된 리더였다면 이렇게 했어야 한다. 늦더위 예보를 접한 리더는 각 부서 책임자와 현장을 잘 아는 직원 스무명 정도에게 점심 도시락 미팅을 제안한다. 여기에서 세 가지 질문을 놓고 두 시간 정도 토론을 한다. 첫째, 늦더위가 온다는데, 전력수급 문제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둘째,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셋째, 만약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매뉴얼에 따라 우리는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하는가?

글로벌 조직들이 정기적으로 하는 절차보다 열 배는 간단한 미팅이지만, 이러한 미팅을 계절이 바뀔 때 한 번씩만 했더라도 이번과 같은 ‘인재’와 ‘시스템 부실’ 사태는 현저히 줄어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매뉴얼의 문제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조만간 위기사건은 또 반복될 것이다. 어떤 위기는 예방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부실한 대응’은 예방이 가능하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리더의 관심뿐이다. 근데 보통 ‘낙하산’들은 그런 데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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