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그것은 지금 모든 문명이 망한다는,
그렇게 역사는 매일 새로 시작한다는
아주 오래된 증거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역사는 매일 새로 시작한다는
아주 오래된 증거에 다름 아니다”
김정환이 <음악의 세계사>를 최근에 출간하였다. ‘음악의’는 작은 글씨로, ‘세계사’는 크고 굵은 글씨로 써서 제목을 달았다. 음악이 세계보다 작다는 뜻이 아니라, 작게 보이는 음악의 역사가 곧 세계사라는 뜻이겠다. 거대한 역사를 촘촘하게 진술한 거작이다. 200자 원고지로 6000장에 이르고, 책으로 1000쪽을 훌쩍 뛰어넘는 이 방대한 저작을 손에 잡은 첫 소감은 ‘용맹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비루한 시대도 위대한 시대가 된다’이다. 표지는 김정환을 ‘전방위 예술가’라고 소개하는데, ‘전방위’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나 어느 정도는 상투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문자가 없는 우리 글자에서 그 말이 대문자를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예술의 총체성과 김정환의 총체적 정신활동이 그 말로 드러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는 벌써 시인으로, 소설가로, 문화와 예술 평론가로, 역사가로, 게다가 번역가로, 100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앉아 있는 독자들을 서게 하고, 서 있는 독자들을 주저앉혔으니, ‘예술가’밖에는 그를 통괄하여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겠고, 이 책이 알려주는 바가 그것이기도 하다. 그가 근래 몇년 동안에 저 500쪽이 넘는 3권의 장편시 <드러남과 드러냄>, <거룩한 줄넘기>, <유년의 시놉시스>를 펴내면서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비밀을 속속들이 훑어내던 시간이 필경 이 거작을 준비하는 과정과 겹쳤을 터인지라, 그가 진술하는 역사의 깊은 자리가 바로 그 삶의 자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육중하면서도 치밀한 책을 꼼꼼하게 읽는 일은 짧은 기간에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들어가는 말과 나가는 말만 두어 차례 읽고도 짧으나마 소회를 말하게 하는 것이 또한 이 책의 힘이다. 저자에게 음악은 음악과 무용, 문학과 미술, 그리고 연극 등 모든 장르의 창의적 예술활동을 줄여서 또는 대표해서 쓰는 말이다. 훌륭한 정치가 지배의 악몽을, 풍요의 경제가 빈부의 악몽을, 문명전달의 이기인 교육이 제도의 악몽을 벗어나지 못할 때, 예술활동을 근간으로 하는 창의적 문화는 문명제도를 자연과 같은 것이 되게 하고, 자연을 인간과 소통하게 하여 그 악몽과 상처를 다스리고, 모든 감각을 동시에 살아 움직이게 하여 이성과 상식과 교양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드높인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동양에서 서양까지, 섬에서 대륙까지, 신화시대부터 현재까지, 현실을 예술로 바꾸고, 예술을 다시 현실로 바꾸어온 인간의 창의와 노력이 정치와 문화, 자연과 과학, 교육과 학습, 개인과 국가,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미래지향적으로 극복해온 역사에 대한 유장하고도 긴장된 진술은 파란만장한 연애소설보다 더 관능적이다. 그 국면 하나하나가 간절하고, 간절한 만큼 풍요롭다. 다시 말해서 새롭다.
수십 갈래로 굽이돌아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여 흘러가는 이 책에서, 그 결론은 의외로, 그러나 적절하게, 짧다. 결론에 해당하는 ‘도돌이표=결’은 200자 원고지 두 장이 채 안 된다. 신화시대에 지하신이 물러간 자리에 하늘신이 들어선다. 왕조시대에 왕조는 조각상으로 왕들의 치적을 나열하여 그 무적불패성을 자랑한다. 이 말 끝에 적은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모든 문명이 망한다는, 그렇게 역사는 매일매일 새로 시작한다는 아주 오래된 증거에 다름 아니다.” 지금 손꼽아 600일 500일을 세는 사람들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음악처럼 흐르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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