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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폭풍 갱년기를 이야기하자 / 박어진

등록 2011-10-28 19:22수정 2011-10-28 19:23

박어진 칼럼니스트
박어진 칼럼니스트
“집안에서 보조자로 살아온 날들이
행복하지 못했어요. 이제
내 삶의 운전대를 되찾아야겠어요”
여러 도시를 도는 이야기 여행 중이다. ‘갱년기 종합선물세트’라고 일컬어지는 증세로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는 여성들을 만나자는 거다. 한국여성재단과 여성의 전화가 마련한 자리로 여성건강 관련 기업이 후원에 나섰다. 광주 모임에는 영광·화순·목포에서까지 달려온 여성들이 가득 찼다.

폐경 또는 완경이라는 일대 사건 전후 40대 중후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여성이 통과하는 전환기에 대한 공부가 시작된다. 얼굴이 화끈, 가슴은 쿵쾅, 윗몸이 이유 없이 땀에 펑 젖기 시작하는, 바로 그때 말이다. 질문이 쏟아진다. 병원에서 권하는 여성호르몬을 투여할 때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지, 갱년기 증세가 가져오는 고통을 마냥 견뎌야 하는지, 갱년기에 취약한 심혈관질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믿을 만한 갱년기 관련 정보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보건사회학 전문가 정 박사의 명쾌한 답변과 조언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린다.

신체적 변화 못지않게 갱년기를 특징짓는 감정 기복은 바로 폭풍 갱년기를 앓게 하는 주범이다. 완경이 가져오는 심리·정서적 충격이 그만큼 큰 것이다. 모두들 자신에게 묻는다. 어디만큼 왔을까? 지금 이대로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건지. 그녀들은 알고 싶어 한다. 갱년기란 결국 자기 내면에 대한 정기검진 같은 것이다.

한 참석자가 말한다. “아이들 양육기간 동안 집안에서 보조자로 살아온 날들이 행복하지 못했어요. 이제 내 삶의 운전대를 되찾아야겠어요.” 자신을 무언가에 완전히 던져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또 다른 여성의 말. “왜 나 혼자만 우울한 거죠?” 자칭 ‘갱년기 멘토’인 내가 나설 차례다. 그녀들이 자신에 대해 잊고 있는 사실을 나는 말해준다. 한 집안을 이끄는 살림이스트인 그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설 도서관 하나를 채울 만큼 풍부한 콘텐츠와 내공을 지닌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그녀들이 지닌 레시피의 총량은 얼마인지. 엄마·아내·며느리·딸 노릇 하며 축적한 인간관계 조정능력은 또 얼마나 막강한지. 여럿이 그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가치가 줄어들지는 않는 법. 거기다 변화무쌍한 다이내믹 코리아 국민으로서 습득한 생존기술력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인생 50을 대과 없이 살아낸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오늘의 나를 인정해야 내일의 나를 디자인할 수 있잖은가.

갱년기 선배로서 나는 제안한다. 갱년기를 통과의례로 받아들이라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라고 권한다. 결정하고 나면 그 방향을 향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니까. 갱년기 자축 파티를 가족·친구들과 여는 것도 한 방법이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변화를 원한다면 한 가지 일을 저질러 보는 걸 강추한다. 수채화든, 춤이든 새롭게 배우고 익히는 건 짜릿한 긴장감을 가져온다. 갱년기 기념행사로 안방에 자기만의 책상을 마련한 이도 있다. 도심 아파트를 떠나 텃밭 딸린 작은 집으로 이사 간 친구도 있다. 한편으로 이 시기는 각자의 삶 속에 하나씩 숨어 있는 숙제 또는 숙원사업과 정면으로 마주쳐야 할 때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린 날의 상처일 수도 있고, 가족관계 내의 풀지 못한 불화일 수도 있다. 자신을 남몰래 끙끙거리게 하는 그 과제를 직시하지 않고 살기엔 남은 날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모두들 이미 알고 있다. 삶은 거대한 로드 스쿨이며 갱년기는 그 긴 여정을 중간점검하는 때라는 걸. 신발끈을 다시 조이며 먼길을 떠나는 이들답게 그녀들은 숨을 고른다. 앞으로의 날들은 자기 힘으로 거듭나야 하는 날들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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