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동화작가
더 이상 숨막히는 자리,
부담스러운 순위 매김이라는
잔인한 서열을 짓지 말았으면
부담스러운 순위 매김이라는
잔인한 서열을 짓지 말았으면
오디션 공화국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심심찮게 본다. 방송사마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나 결국은 경쟁을 부추기는 우열 가리기이고,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한 대규모의 극적 구성으로 보인다. 외국에도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있고, 텔레비전이 아니라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누가 누가 잘하나’ 같은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 두번째 공개 오디션이 진행중일 때 공영 방송사 피디였던 지인이 무심코 말했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런 프로를 만들지 다들 고민이라고.
처음에는 확실히 신선했다. 노래 실력만으로 무대에서 빛나는 젊은이는 외모지상주의에 통쾌하게 한방 먹이는 것 같았고, 참가자들이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은 재능의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확인시키기도 했으니까. 수전 보일이나 폴 포츠 못지않은 감동도 있었다. 방송에서 안 보이던 예전 가수를 심사위원으로나마 다시 보는 즐거움도 괜찮고, 아마추어에게 하는 조언을 통해 대중가수로서의 그들 생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데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고, 이젠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방송마다 비슷비슷한 진행이라 식상하고, 대중가요 일색이라는 편식에도 물렸고, 무엇보다 오디션에 참가하고자 전국에서 모여드는 인파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다. 노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저리 많은가 싶다가도 먹잇감 하나에 꾸역꾸역 몰려드는 형국이라 아우성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집단 최면에 걸려버린 것처럼 보이니.
<나는 가수다>는 처음부터 조금 달랐다. 아마추어 대상이 아닌 프로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살아남기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놀랍게도 정상급의 그들이 모이더니 판은 벌어졌고, 나는 흥미롭게 지켜보며 귀의 호사를 누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저기에 초대받지 못하는 가수는 자존심 상하겠는걸. 더할 수 없이 진지한 무대에 이지적인 태도로 귀 기울이는 방청객. 비로소 뭔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현란한 군무가 점령해버린 음악방송에 진짜 가수가 돌아온 것 같은 쾌감을 느끼며 대중가요의 진수를 경청할 수 있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누군가 낙오될 수밖에 없는 설정의 방송이라는 걸 알면서도 몹시 긴장한 가수와 지나치게 골몰해져 있는 방청객을 보는 일이 불편해지고 있다. 특히 김경호의 무대는 애처롭기까지 했다. 하얗게 질려 시선 처리조차 못하고 있는 모습을 숫기 부족하다고, 과감하지 못하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누가 저 자유분방하게 노래하던 사람을 단두대와 같은 자리에 세웠나. 노래하는 자의 즐거움과 음정·박자 좀 틀려도 맘껏 따라 부르고 싶어지는 우리 자유는 다 어떻게 된 걸까. 중요한 걸 잃어버린 기분이다. 저들은 이미 모두 각자의 개성으로 뭇사람을 충분히 행복하게 해주는 가수건만 꼭 이래야만 하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열정적인 노래가 그리운 시대이기는 하다. 그래서 이런 시도가 신선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건 지나치다. 가히 경쟁사회의 최고봉이 아닌가. 그는 가수다. 더 이상 숨막히는 자리, 부담스러운 순위 매김이라는 잔인한 서열을 짓지 말았으면. 편하고 자연스럽게 읊조리며 위안을 얻는 게 대중가요 아닌가. 일면식 없어도 마치 이웃인 양 친근한 이들이 대중가수 아닌가. 어쩌자고 이렇듯 경직되고 근엄해져야 하나. 순위에서 밀려날까 봐 불안해하는 그들을 더는 보지 않으련다. 우리에게는 몇 등 가수가 아닌 그만의 노래만 있으면 충분하다.
가수 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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