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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엄마 / 하성란

등록 2011-11-11 19:26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혹시 아버님도 두려운 게 아닐까
남아 있는 삶에 대한 불안, 그래서
어릴 때처럼 엄마를 찾는 걸까
어느 날 시아버님이 마루를 종종걸음치는 시어머님을 불러세웠다. “어매요!” 어머니는 두 귀를 의심했다. 설마 잘못 들었겠지, 되묻기도 전에 다시 아버님이 어머님을 불렀다. “어매요!” 다 늙어빠진 할매라고 놀리는 건가 싶었다. 어머님도 장난처럼 아버님께 물었다. “내가 왜 당신 어매니껴?” 사이를 두고 시아버님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럼 누구니껴?”

가끔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깜빡깜빡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게 몇년 전이었다. 생신이라 가족들이 다 모여 식사를 하고 케이크의 촛불도 껐는데 자식들이 다 돌아간 그날 밤, 어지럽혀진 집안을 둘러보며 “아까 누가 왔었는가?”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병원에 갔어야 했다. 요즘 들어 아버님은 별일 아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서울로 올라와 진찰을 받았다. 시아버님의 병명은 우리가 짐작한 대로였다. 초기라는 것과 약으로 진행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빠지지도 않았지만 좋아지지도 않아서 여전히 어머니를 어매로 부르고 난데없이 화를 내서 어머니가 간을 졸이는 모양이다. 아버님이 혼동할 만큼 두 분 모습이 닮았을까. 외모 때문이 아니라 집안에 그렇게 나이 든 사람이라곤 ‘어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버님이 착각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 수 초 동안 아버님은 얼마나 먼 과거까지 다녀오는 걸까. 어쩌면 결혼도 하지 않은 먼 과거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던 어린 시절이다. 아니면 신혼 무렵일까. 시부모님은 스무살이 채 되기도 전에 혼인해 육십년 가까이 살았다. 저렇게 늙은 여인이 당신 아내라는 걸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아버님은 혈기 왕성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 있다.

반짝, 정신이 돌아오면 홍안의 아내는 온데간데없고 흰 머리의 주름살투성이인 아내가 서 있으니 그때마다 제일 많이 놀라는 건 아버님 자신일지도 모른다. 투정을 부릴 어매는 아예 없다. 그렇게 되확인하는 현실은 더욱 차갑기만 할 것이다. 여든살이 넘은 나이 들고 기력 없는 노인 하나가 있을 뿐이다. 꿈이라면 깨고 싶다. 그때마다 아버님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버럭 화를 낸다.

타국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이곳저곳에서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좇다 우연히 백인 가족에 낀 동양 여자애를 보았다.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이 많다는 정보가 없었대도 한눈에 입양된 아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전날 한 모임에서 만난 시인도 어릴 적 입양되어 그곳에서 자란 젊은 여성이었다. 그는 동료에게 그토록 부유한 한국이 왜 아직도 다른 나라에 아이들을 입양 보내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한국이 싫어 한국 책까지도 멀리했다는 그가 내년 한국을 방문한다. 바로 엄마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는 혼자서 배운 한국말로 벌써 엄마, 라고 불러보았을지도 모른다. 투정과 어리광, 미움과 그리움이 한데 섞였을 그 말, 엄마.

불현듯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몹시 그리워진다. 눈을 뜨자마자 아이가 제일 먼저 찾는 것은 제 엄마다. 엄마가 제 옆에 없으면 “엄마!” 크게 부르면서 단숨에 부엌으로 달려와 품에 안긴다. 겁이 났었는지 가슴이 콩닥거린다. 혹시나 아버님도 두려운 것이 아닐까. 남아 있는 삶에 대한 불안. 너무도 나약해진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비관스러울 것이다. 화를 내도 풀리지 않아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엄마를 찾는 것은 아닐까. 아버님이 어매를 불러세워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닐까. “어매요, 나 무섭니더. 정말 무섭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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