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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뒷담화를 즐기다 / 하성란

등록 2011-12-09 19:14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뒷담화’에서 방점은 ‘뒤’에 찍혀야…
그 말엔 남의 험담이나 늘어놓는다는
죄의식과 함께 장소·태도도 나와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친구와의 추억이 종종 떠오른다. 맨 처음 가무잡잡하고 작은 그녀의 얼굴, 소리 없이 웃고 있다. 뭔가 짓궂은 표정이다. 아이스크림 가게 한구석에 앉아 있다. 우리는 두 가지 맛이 든 아이스크림 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가지 달콤함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그리고 바로 뒷담화의 달콤함.

이런저런 추억을 다 제쳐두고 기껏 그런 장면이나 떠올린다고 눈을 흘기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훗날 누군가 나를 떠올린다면 나는 나와 함께했던 이런 순간들을 떠올려주길 바란다. 적어도 그 순간 나는 솔직했다. 그녀와 나는 차를 타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를 뚫고 지나기도 했고 어느 여름 갑자기 불어난 개울물에 휩쓸리기도 했다. 그 많은 추억 중에서도 나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의 그 장면을 떠올릴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다. 가장 그녀다운 얼굴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뒷담화’라고 검색하니 아무런 자료가 뜨지 않는다. 한 포털 사이트의 사전에서야 뒷담화란 ‘담화’와 우리말의 ‘뒤’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라고 나와 있다. 왜 뒷담화인 줄도 모른 채 우리는 둘만 모여 앉으면 수다를 떨고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뒤따마를 깠다’. 담화를 다마라고 알았다. 구슬 곧 머리이고 누군가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라고 오해했다. 이미 죄의식이 깔려 있었다.

바야흐로 토크쇼의 전성시대다. 많은 연예인들이 그 코너를 통해 재발굴되고 인기를 얻었다. 네댓명에서 스튜디오를 꽉 채우는 수십명의 패널까지 등장해서 시시콜콜 수다를 떤다. 아예 스튜디오를 작은 사랑방이나 사우나실로 꾸며놓기도 한다. 수다의 긍정적인 측면을 모르는 바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운 이들의 이야기도 할 수밖에 없다. 뒷담화 문화가 텔레비전으로 옮겨왔다. 흥미를 끌려다보니 수위를 넘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다소 무례할 수 있는 이야기도 거침이 없다. 과거 텔레비전 속 인물들은 최소한의 격식을 차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이 더 이상 ‘텔레비전스럽지’ 않게 된 것을 시청자들은 오히려 신선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게스트로 나온 두 가수의 수다에 멤버였던 한 친구가 상처를 입고 그들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기사를 읽고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을 따라 읽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글들을 읽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그것이 그 사실을 털어놓은 두 사람의 잘못일 뿐인가. 그 프로그램은 생방송이 아니었다. 녹화였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싶은 장면은 삭제를 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책임자는 시청자들이 흥미로워할 내용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뒷담화의 쾌감을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이미 모든 것에 무감각해질 대로 무감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한 팀이었던 친구들끼리 뭐 그만한 일에 화를 내냐고 두 가수는 의아해했다. 그들이 잊은 것이 있다. ‘뒷담화’에서 방점은 ‘뒤’에 찍혀야 한다. 그 말엔 남의 험담이나 늘어놓는다는 죄의식과 함께 장소와 태도도 나와 있다. 둘이서만 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걸 그들은 잠깐 잊었던 것이다.


뒷담화, 여전히 뒷담화를 한다. 하지만 그녀가 없는 탓인지 그전만큼 신이 나지 않는다. 악의가 없는 수다였음에도 그녀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는 불안하지 않았다. 혹시나 다른 이의 귀에 들어가 오해라도 불러일으키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니 둘만 모여 앉으면 남의 이야기를 즐기는 우리들에게, 과연 일말의 책임도 없는 것인가.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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