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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덮어 가리기와 백사마을 / 황현산

등록 2011-12-16 19:18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박정희 이후 우리의 근대화는
문젯거리를 올곧게 해결하기보다
덮어서 보이지 않게 했다
1967년 초겨울, 무시울이라고도 불리던 불암산 자락에 여러 대의 트럭이 줄을 지어 들어왔다. 솥단지와 보따리를 부둥켜안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앞세우고 트럭에서 내렸다. 청계천을 복개하고 그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쫓겨난, 이른바 청계천 철거민들이었다. 산자락은 넓었지만 집은 없었다. 전기나 수도 같은 기반시설도 물론 없었다. 짐짝처럼 부려진 가족들은 여기저기 천막을 치고 닥쳐올 추위에 대비했다. 물이 나올 만한 곳을 찾아 우물을 파고, 천막 앞에 화덕을 놓아 조석을 끓였다. 물론 학교도 없었다. 초등학생들은 청량리까지 걸어가야 배정된 학교의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천막을 세웠던 자리에 담을 쌓고 지붕을 올리고 창문을 뚫었다. 산자락의 사람들은 날마다 서울의 궂은일을 맡아 하기 위해 십리를 걸어가 버스를 타고 시내에 들어갔다. 산자락에서도, 이발을 하던 사람은 이발소를 차리고 세탁을 하던 사람은 세탁소를 냈다. 시장이 생기고 신문보급소가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3000여 주민이 그 삶을 붙이는 마을 하나가 형성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도 이 마을은 그 주민들의 삶만큼이나 기구한 데가 있다. 1963년까지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 속했다가, 첫 트럭이 들어올 때는 서울시 성북구 중계동에 속했고, 다시 도봉구 중계동을 거쳐 노원구 중계동이 되었다. 그러나 주소의 끝자락은 언제나 중계동 산104번지여서 백사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주소의 역사는 서울이 그 주변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와 관련된 서민들의 삶을 식민화한 역사와 같다.

청계천 복개는 내가 ‘덮어 가리기 근대화’라고 부르는 것의 전형적인 예이다. 박정희 이후 오랫동안 우리의 근대화는 눈앞에 문젯거리가 있으면 그것을 올곧게 해결하기보다는 덮어서 보이지 않게 했으며, 구질구질하다고 여겨지는 삶은 그것이 성장하고 개화하기를 돕고 기다리기보다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몰아냈다. 이명박 시장 시절에 덮었던 청계천을 다시 열었지만,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개천의 양안과 바닥을 시멘트로 덮어 단장하고 수돗물로 냇물을 연출하게 하였으며, 시민들의 삶과 깊이 연결된 복잡한 가게들을 멀리 내보냈으니, 조금 세련된 ‘덮어 가리기’에 불과하다. 오세훈 시장 시절의 디자인 서울에 이르게 되면, 요즘의 말투를 빌려 ‘후기 덮어 가리기’나 ‘포스트 덮어 가리기’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실로 적절하겠다.

백사마을의 개척자들과 그 주민들의 삶에는 이 덮어 가리기의 불행한 흔적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허허벌판이었던 산자락에 그들을 뿌리내리게 한 것도 이 덮어 가리기였고, 그 뿌리를 다시 흔든 것도 이 덮어 가리기이다. 곤궁한 가운데서도 갖출 것을 다 갖추고 나름대로 발전하던 이 마을에 10여년 전부터 재개발 소식이 나돌면서 딱지장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집주인들은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하나 둘 세입자로 전락했다. 마을은 발전을 멈추었고, 더구나 보존이냐 개발이냐의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는 그 안에 몸 붙인 삶이 모두 허공을 밟고 선 모양새가 되었다.

딱지장사들이 몰려들 때부터 마을의 구석구석과 주민들의 생활을 그려온 화가 이성국씨는 이 마을을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두어 시간만 마을의 크고 작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이 마을이 없어져야 할 달동네가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지녀온 좋은 삶의 개념을 신기하게도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자연마을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덮어 가리기가 문제의 해결이 아니란 것을 분명 깊이 이해하고 있을 박원순 시장은 이 마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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