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보육원에서 연말 보내는 아이들
1만6127명.
2010년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아동복지 양육시설(보육원) 보호아동 현황이다. 아이들은 전국 263곳 시설(법인 238개, 개인 25개)에 골고루 퍼져 생활을 하고 있다. 과거, 보육원은 ‘전쟁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한 시설이었다. 유서있는 보육원의 경우 대부분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전쟁고아는 부모의 빈곤·가정파탄·수감·아동학대 등으로 정상적 양육이 불가능한 가정의 아이들로 대체됐다. 한 아동복지시설 관계자는 “요즘 들어오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님 양쪽 모두가 없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이혼이나 경제적 문제 등으로 가정이 파탄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곧장 보육원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1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아동복지센터에서 일정기간 보호를 받는다. 보호기간이 끝난 뒤, 아동복지센터에서 각종 조건을 검토해 보육원에 아이들을 배정한다.
이번 ‘낮은 목소리’는 보육원에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는 아이들을 찾아갔다.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라는 구호가 낯선 아이들에게 연말을 보내는 심정을 담은 글을 직접 받았다. 글에는 눈물도, 웃음도 있었다. 글을 써본 경험이 많은 아이들이 아니라, 다소 거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엄마는 병으로 아빠는 생활고로
날 떠났지만 시간이 상처 아물게 해 돈으로 못 사는 것 세상에 많지만,
그 가운데 저의 삶이 제일 값집니다
저는 한쪽 날개가 부러진 새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러진 채로 태어나진 않았습니다. 1993년 8월9일 햇빛이 맑은 화창한 날, 그날에 저는 엄마와 아빠의 따뜻한 품속에서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저는 정말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저는 친구들과 나는 연습을 하기 위해 우리 숲의 가장 큰 나무의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큰 독수리가 날아왔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두 눈을 꼭 감고 날개로 가렸습니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옆에 있던 가장 친했던 친구가 독수리에게 채여 땅으로 떨어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친구를 잃은 생각에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둥지 안이었습니다. 일어나기 위해 날개를 펴봤지만 왼쪽 날개를 다쳐서 제대로 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오랜 정성어린 간호 아래 날개가 나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날개가 다 나아갈 때쯤 우리 가족의 둥지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더 튼튼한 둥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엄마가 아프셨습니다. 엄마의 병은 낫지 않고 점점 심해져서 날지 못하게 되고 결국엔 저의 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저의 왼쪽 날개는 멍이 들고 큰 상처가 생겼습니다. 혼자가 되어버린 저는 아빠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행히도 아빠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다친 날개로 무리하게 먼 여행을 한 저는 왼쪽 날개의 상처가 더 심해져버렸습니다. 아빠는 저를 치료할 수 없어서 저처럼 다친 어린 새들을 보호해 주는 곳에 데려다 놓으시고 또 떠나버리셨습니다. 아빠가 저를 두고 떠났다는 생각에 너무 슬펐습니다. 왼쪽 날개의 상처는 더 깊어져 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행복한 일도 많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다 보니 왼쪽 날개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아직 날개의 상처들이 다 아물지 않았는데 또 상처가 생기고 이번엔 기어코 부러지고야 말았습니다. 여기에는 저처럼 건강하지 않은 새들이 많습니다. 서로 비슷해서인지 마음을 잘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해주었습니다. 그중 저와 나이가 같은 새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어떤 새보다도 아름다운 새였지만 알고 보니 상처투성이인 새였습니다. 몸도 허약해서 자주 감기에 걸리는 그런 새였지만 항상 밝게 웃는 새였습니다. 그런데 그 새가 큰 병에 걸려버렸습니다. 낫기 힘든 병에 말입니다. 매일 약을 먹어야 하고 밥도 잘 먹을 수 없었습니다. 2년 동안 친구가 그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면서 저의 왼쪽 날개에도 자꾸만 상처가 생겼습니다. 저는 아파서 밖에도 못 나가는 그 새를 위해 바깥세상 이야기도 해주고 밥 먹는 것도 도와주고 심심할까봐 친구들도 데려오고 또 얼른 나으라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새도 결국은 저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당연히 이별도 있는 거지만 사랑했던 여러 새들을 떠나보내니 그 큰 힘듦을 견디지 못하고 저의 날개는 부러졌습니다. 이제 곧 저는 부러지지 않은 한쪽 날개로 홀로서기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 부러진 날개가 고쳐지고 나을 수도 있습니다. 날개가 낫든 낫지 않든 지금까지 해온 나는 연습을 계속해서 저는 높이 날아오를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세상에 많지만 그중 저의 삶이 제일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날개에는 많은 상처들이 생겼지만 앞으로 이 상처들이 저의 삶을 더 값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당연히 누군가의 삶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자신의 삶을 무엇보다도 값어치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저에게는 특별한 한해였습니다. 고3으로서 대학도 준비하고 19살로서 자립도 준비해야 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삶을 값어치있게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노력들을 마무리 짓는 시기였고 살아온 날보다 훨씬 길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계획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동안에 저를 도와주시고 옆에서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응원에 힘입어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김빛나
날 떠났지만 시간이 상처 아물게 해 돈으로 못 사는 것 세상에 많지만,
그 가운데 저의 삶이 제일 값집니다
저는 한쪽 날개가 부러진 새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러진 채로 태어나진 않았습니다. 1993년 8월9일 햇빛이 맑은 화창한 날, 그날에 저는 엄마와 아빠의 따뜻한 품속에서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저는 정말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저는 친구들과 나는 연습을 하기 위해 우리 숲의 가장 큰 나무의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큰 독수리가 날아왔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두 눈을 꼭 감고 날개로 가렸습니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옆에 있던 가장 친했던 친구가 독수리에게 채여 땅으로 떨어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친구를 잃은 생각에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둥지 안이었습니다. 일어나기 위해 날개를 펴봤지만 왼쪽 날개를 다쳐서 제대로 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오랜 정성어린 간호 아래 날개가 나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날개가 다 나아갈 때쯤 우리 가족의 둥지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더 튼튼한 둥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엄마가 아프셨습니다. 엄마의 병은 낫지 않고 점점 심해져서 날지 못하게 되고 결국엔 저의 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저의 왼쪽 날개는 멍이 들고 큰 상처가 생겼습니다. 혼자가 되어버린 저는 아빠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행히도 아빠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다친 날개로 무리하게 먼 여행을 한 저는 왼쪽 날개의 상처가 더 심해져버렸습니다. 아빠는 저를 치료할 수 없어서 저처럼 다친 어린 새들을 보호해 주는 곳에 데려다 놓으시고 또 떠나버리셨습니다. 아빠가 저를 두고 떠났다는 생각에 너무 슬펐습니다. 왼쪽 날개의 상처는 더 깊어져 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행복한 일도 많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다 보니 왼쪽 날개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아직 날개의 상처들이 다 아물지 않았는데 또 상처가 생기고 이번엔 기어코 부러지고야 말았습니다. 여기에는 저처럼 건강하지 않은 새들이 많습니다. 서로 비슷해서인지 마음을 잘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해주었습니다. 그중 저와 나이가 같은 새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어떤 새보다도 아름다운 새였지만 알고 보니 상처투성이인 새였습니다. 몸도 허약해서 자주 감기에 걸리는 그런 새였지만 항상 밝게 웃는 새였습니다. 그런데 그 새가 큰 병에 걸려버렸습니다. 낫기 힘든 병에 말입니다. 매일 약을 먹어야 하고 밥도 잘 먹을 수 없었습니다. 2년 동안 친구가 그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면서 저의 왼쪽 날개에도 자꾸만 상처가 생겼습니다. 저는 아파서 밖에도 못 나가는 그 새를 위해 바깥세상 이야기도 해주고 밥 먹는 것도 도와주고 심심할까봐 친구들도 데려오고 또 얼른 나으라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새도 결국은 저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당연히 이별도 있는 거지만 사랑했던 여러 새들을 떠나보내니 그 큰 힘듦을 견디지 못하고 저의 날개는 부러졌습니다. 이제 곧 저는 부러지지 않은 한쪽 날개로 홀로서기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 부러진 날개가 고쳐지고 나을 수도 있습니다. 날개가 낫든 낫지 않든 지금까지 해온 나는 연습을 계속해서 저는 높이 날아오를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세상에 많지만 그중 저의 삶이 제일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날개에는 많은 상처들이 생겼지만 앞으로 이 상처들이 저의 삶을 더 값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당연히 누군가의 삶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자신의 삶을 무엇보다도 값어치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저에게는 특별한 한해였습니다. 고3으로서 대학도 준비하고 19살로서 자립도 준비해야 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삶을 값어치있게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노력들을 마무리 짓는 시기였고 살아온 날보다 훨씬 길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계획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동안에 저를 도와주시고 옆에서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응원에 힘입어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김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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