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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낮은목소리] ‘내가’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김인주

등록 2011-12-22 19:42

보육원에서 연말 보내는 아이들
딱히 성대한 크리스마스 보낸 기억이 없다
거창한 계획 없다고 투정하지 마세요
쌀쌀한 가을이 가고 어느새 너무나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은 우리의 두꺼운 옷을 더욱더 굳게 여미게 만든다. 겨울 하면 추운 날씨 말고도 군고구마, 눈, 구세군,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이의 사람들끼리 보내거나 가족들과 보내는 크리스마스. 그날이 다가옴에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쓰거나 트리를 장식하곤 한다. 또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받거나 새하얀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도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에 거리를 걷다 보면 지나가는 가게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캐럴송을 틀어놓곤 한다. 그런 반짝반짝 빛나는 거리를 지나면 어느샌가 나도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설레는 크리스마스….

지금까지의 나의 크리스마스는 어땠었지? 생각을 해보면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크리스마스에도 항상 늦잠을 자고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이나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아,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좀더 기억에 남을 재밌는 일이라도 할걸’이라는 후회도 살짝 들게 된다.

한가지,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산타클로스의 존재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을 때였다.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 때 유치원에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러 오신다고 해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잠시 후 산타할아버지는 친구들과 나의 선물을 들고 오셨다. 선물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척 기뻤던 것은 기억이 난다. 선물 증정식이 끝이 나고 들뜬 마음으로 집에 가려고 유치원차를 탔다. 그런데 운전석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운전대를 잡고 계셨다. 산타가 운전하는 유치원차라니! 뭔가 이상했지만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산타할아버지는 우리를 태우고 각자의 집으로 데려다 주셨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할아버지는 뭔가 답답하셨는지 수염을 ‘뚝’ 하고 떼버리셨다. ‘오 마이 갓! 내 산타할아버지는 가짜였어!!’ 그래도 차라리 할아버지가 우리 유치원의 남자 원장선생님이셨으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여자 원장선생님이 산타 분장을 하셨던 것이었다. 그 후 산타할아버지의 실체(?)를 목격한 나와 몇몇 친구들은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느껴본 충격이었다. 지금은 물론 귀여운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해주는 에피소드 중 하나지만.

지금까지 딱히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보낸 기억이 없어 이번엔 계획을 세워볼 만도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는 꼼짝없이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친구들과 잔뜩 꾸미고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서 놀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보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크리스마스는 온 천지 사람들이 온통 거리로, 유원지로 쏟아져 나오는 날이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와 같은 날에는 역시 가족들과 지내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물론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항상 같은 영화라서 지루하지만 나름 재밌는 특선영화를 보며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자르고 우리들끼리의 선물도 주고받고 추억으로 남길 사진도 찍으며 보내고 싶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 하다가 잘 시간이 되어서 이부자리에 누워서 어두운 방 안에서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를 보며 ‘오늘 하루는 행복했어!’라고 생각하며 잠들고 싶다. 어디 놀러 간 것도 없고 거대한 추억도 아니지만 이 조촐한 파티에서 난 분명 행복을 느끼며 잠이 들 것이다.

난 이렇게 행복한 상상을 하곤 한다. 가끔은 이렇게 간단하고 소박한 상상도 실현이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면 진짜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 마냥 설레기만 한다. 세상에 ‘이번 크리스마스도 또 혼자 보내게 생겼네…’라고 생각하거나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거창한 크리스마스 계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남이 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내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세요.’ 그리고 세상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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