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논설위원
시대를 달리하지만 물불 가리지 않고
허영을 좇는 이들을 상대로
돈벌이하는 수법은 똑같다
허영을 좇는 이들을 상대로
돈벌이하는 수법은 똑같다
지금으로부터 2세기 전 조선에서 있었던 촌극이다. 평양 출신 방랑객 봉이 김선달이 한양 출신 졸부양반 허풍선이에게 대동강 물을 통째로 파는 계약서를 써주고 황소 60마리 값에 해당하는 큰돈을 받았다. 계약서에는 이렇게 적었다. ‘상기 대동강 물을 소유자와 정식 합의하에 넘김을 증명함과 동시에 천하에 밝히는 바이다.’
21세기판 봉이 김선달식 쇼가 벌어지고 있다. ‘뉴세븐원더스(N7W)재단’이라는 단체가 주도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행사다. 이 단체가 지난달 12일 발표한 7대 자연경관의 한곳으로 우리나라의 제주도가 잠정 선정돼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지난 21일에는 재단 이사장이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정운찬 위원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최종 선정됐음을 미리 알리며 축하한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그 뒤로도 여러 의혹이 들끓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뉴세븐원더스와 이번 행사에 대한 정보를 추적해봤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뉴세븐원더스는 정체가 흐릿한 조직이며 이번 행사 또한 사기성이 짙다는 거다.
왜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궁금하다면 뉴세븐원더스의 인터넷 누리집(world.n7w.com)에 한번 들어가 보시라. 명색이 국제행사를 주관하는 조직의 누리집이라면서 구성이나 내용이 아주 형편없었다. 웬만한 국내 개인블로그만도 못한 수준이다. 7대 자연경관 잠정 선정지를 발표하는 동영상은 한편의 삼류 코미디 같다. 버나드 웨버 재단 이사장이 골방 같은 데 앉아 세계 누리꾼들을 상대로 7대 자연경관을 선포(?)한다. 어디서, 누가, 어떤 기준과 심사과정을 거쳐 선정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전화투표를 마감한 결과라는데 전체 투표수와 후보지별 득표수도 내놓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알라는 식이다.
누리집의 질의응답(Q&A) 코너를 보면 더 어이가 없다. 이 단체의 수입과 운영비가 전화투표자들이 내는 전화요금과 최종 선정지역 후원자들이 내는 인증 수수료라고 한다. 또 투표는 누구든 무제한으로 반복할 수 있게 했다. 아예 대놓고 ‘국제전화를 통해 돈 많이 내면 선정해준다’고 유혹하는 셈이다. 제주도는 이런 몰상식적인 선정 방식에 적극 동참했다. 제주도의회 추정에 따르면, 행정전화로만 1억건이 넘는 투표를 해 200억~360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었다.
뉴세븐원더스는 2007년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 선정 행사를 주관하면서도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국제기구나 스위스 정부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지 않은, 정체가 뚜렷하지 않은 몇몇 외국인이 벌이는 상업적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네스코는 ‘뉴세븐원더스의 사업은 비과학적이고 공정성이 없으며, 영리 목적의 개인사업인데다 미디어 홍보에 집중하는 투기성 사업’이라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 단체는 이름 그대로 불가사의한 상태다. 주소나 연락처, 조직 구성, 자금 운영 등에 대한 정보가 모두 비밀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뉴세븐원더스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을 검증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어쨌든 좋은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의혹투성이인 7대 경관 선정은 경제논리로도 거부하는 게 낫다. 투명성과 공정성 시비가 잦은 조직이나 행사에 휘말리면 오히려 제주도의 대외이미지만 나빠진다.
제주도는 온 국민이 즐겨 찾고, 또 외국에 나가면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유산이다.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해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명물이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음흉한 상술에 낚이게 해서는 안 된다. 살구나무에 배꽃이 필 수는 없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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