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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김정일 이후, 각성 / 박민희

등록 2011-12-29 19:26수정 2012-06-06 11:14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남과 북 모두 변화가 절실한
임계점에 왔다는 깨달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2011년이 떠나가고 있다. 한 시대를 마감하는 위기와 혁명의 기운이 번졌던 거창한 한 해에 어울리는 결말이다.

17년 동안 북한의 절대권력을 쥐고 핵 개발로 한반도와 세계를 뒤흔든 그에 대한 평가는 계속될 것이다. 일단 그의 사후 한국에서 제기된 비판들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3대 세습을 강행하면서 김씨 일가와 소수의 특권층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굶주리는 인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호화 생활을 누렸으며, 평양 주민들은 그의 정권을 지지하며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는 비판들이다.

북한판 ‘1%와 99%의 불평등’에 대한 분노라고 할까. 다만 북한을 겨냥해 들이대는 이런 잣대가 한국 사회에도 공평하게 적용되면 좋겠다. 한국에서도 소수가 점점 더 큰 부와 특권을 독점하면서 2세·3세에게 세습하고 있고, 일반인들은 취업난과 비정규직 착취, 늘어나는 빚과 점점 팍팍해지는 삶에 절망하고, 부유층의 표가 보수정당에 집중되는 현상이 있지 않은가. ‘분단체제’하의 남과 북 모두 변화가 절실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깨달음.

둘째로 김 위원장 사망 뒤 세계가 모두 깨닫게 된 것은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의 절대적 영향력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이 햇볕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5·24 조처로 북한과의 교류의 끈을 스스로 모두 끊어버림으로써 한반도 상황 관리에 대한 레버리지를 스스로 파괴하는 동안,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관계와 투자, 교류를 계속 늘리는 ‘중국판 햇볕정책’을 통해 대북 영향력을 급격히 확대했다.

2011년 상반기 북한의 대중국 수출은 10억달러를 초과해 2010년 한 해의 3배에 이르렀는데 대부분이 천연자원이다. 중국은 북한 생필품의 80%, 식품의 45%를 공급한다. 북한의 많은 기구와 개인들이 중국과의 상업적 관계에 의존해 살면서 친중파 이익집단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25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북한에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의 영향력이 극히 중요하다”며 북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일본과 공유해줄 것을 요청한 것은, ‘평양으로 통하는 모든 길은 중국을 거쳐야 한다’는 국제적 인식을 상징한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 뒤 곧바로 중국 외교부가 한국 등 4개국 대사를 불러 북한을 자극하지 말도록 요구하는 등 중국이 북한의 ‘후견인’처럼 행동하는 데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안정과 현상유지가 필요한 중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에 기반해 철저히 준비해 기민하게 움직인 것은 중국 입장에선 당연하지 않은가. 오히려 진정한 문제는 막연한 흡수통일론에 기반한 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견제할 지렛대도, 북한에 대한 자체 정보력도,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준비 태세도 갖추진 못한 우리의 현실 아닌가.

‘김정일 이후 시대’의 북한을 둘러싼 수많은 예언이 있다. 28살의 김정은은 북한 지도층 내의 이익집단과 파벌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앉혀진 상징적 인물일 뿐, 내부의 갈등을 제어할 능력이 없어 북한의 불안정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반면 김정은이 비록 어리지만 아버지로부터 철저한 통치 교육을 받았으며 유일권력 체제인 북한에서 그의 권위에 도전할 세력은 나올 수 없어 체제가 안정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극과 극의 전망이 맞서는 불안정한 현실에서, 북한 권력층 내부의 작은 변화도 한반도에 거대한 해일을 몰고 오는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북한의 변화를 감지할 능력을 상실한 한국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전략을 준비할 수 있을지, 중요한 선거의 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2012년, 모두 깨어 있기를.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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