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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떨어진 꽃 / 황선미

등록 2011-12-30 20:29

황선미  동화작가
황선미 동화작가
우리는 어떻게 어른일 수 있고
나는 소년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존재인가 자꾸만 되묻게 된다
춥다. 참 춥다. 눈 내려 아름다운 풍경도 잠깐이고 가슴을 파고드는 추위를 견뎌내기가 힘겨운 시절이다. 추위가 어디 계절 탓이기만 한가. 며칠 사이에 나라가 온통 두 사람의 죽음으로 막막하고 암울한 한기에 휩싸였다.

충분히 예견하였으나 대변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모호한 북한 지도자의 죽음. 그리고 겨우 열네살밖에 안 된 소년의 느닷없는 죽음. 안 그래도 어려운 연말이건만 우리가 겪어내야 할 어려움이 몇 곱절 늘어난 형국이다. 김정일의 죽음이 그려낼 힘의 구도가 막연한 두려움이라면 열네살 소년의 죽음은 생살을 헤집는 듯한 아픔이라 연일 늘어나는 소년에 관한 새 기사를 나는 차마 다 읽을 수가 없다. 우리한테야 느닷없는 소식이나 소년에게는 매일매일이 지옥이었을 폭력적인 시간. 사람이 이렇게도 잔인하고 사악한 존재라니. 우리는 무엇으로 짐승과 구별되고자 하나. 우리는 왜 살고 어떻게 어른일 수 있고 나는 소년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존재인가 자꾸만 되묻게 된다.

아직 꽃이 되기도 전에 떨어져 버린 소년. 이 죽음이 괴로운 건 명백히 죽임인 까닭이다. 소년의 어머니는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한다고 한다. 나는 소년이 남긴 편지를 읽는 동안에 뼈가 아프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섬벅 베어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기도한다는 어머니 심정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감정의 온도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저 너무나도 외롭게 그런 편지를 써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마지막이 안타깝고 또 가여워서. 어디에도 손 내밀 사람이 없어 벌어진 일이 아닌가. 단죄만이 해결도 아니겠지만 자칫 면죄부가 될지도 모를 용서 또한 쉽게 거론하지 말았으면.

시내버스에서 학생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귀를 막고 싶어질 때가 많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욕이 빈번하게 튀어나오는 것도 듣기 고역이지만, 누구를 어떻게 때려서 피를 보았고 맞은 애가 어떤 반응이었는지를 주변 사람 아랑곳하지 않고 떠벌리는 학생들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도대체 어떤 망나니들인가 싶어 돌아보았다가 아직 솜털 보송보송하고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이라 더 놀라고. 풋풋하고 순진해 뵈는 아이들 속에 꿈틀거리는 분노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증폭되는지 알아낼 길이 전혀 없는 것일까. 치유의 방법은 없나. 재미와 장난이라기에는 내포된 잔인성이 섬뜩한 지경이니. 아이들의 폭력 문제가 단지 그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 단죄와 용서 외에 우리가 풀어야 할 난제가 남는다.

아이의 환경이 바로 어른이다. 자연을 갈아엎은 도시에 살면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고 가난과 실패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잔소리꾼이 된 우리들. 열심히 살아왔건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 남을 해코지해서라도 나를 충족하고 남의 아픔을 보면서 되레 웃기까지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이 번듯한 도시가 정글에 다름 아니고 사람이 비열한 야수일 뿐이라는 걸 고스란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어디 먼 외계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식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다.

연말이 풍성하고 즐거워야 명년을 기대할 텐데 마음이 몹시 무겁다. 나는 환상을 갖기에는 세상이 너무 팍팍하다는 걸 열살도 되기 전에 알아버렸다. 섣부른 꿈 같은 건 품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 달달한 소망 하나쯤은 품어야 삭막한 날들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혹한에 떨어져 시들 수도, 조용히 스러질 수도 없는 소년을 기억하며. 소년의 사건이 생각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한 송이 꽃으로 바쳐질 수 있을까.

황선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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