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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빈집 / 하성란

등록 2012-01-06 19:13

하성란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어쩌면 너무도 외로운 나머지
아이는 빈방에 대고 다녀왔습니다,
혼잣말을 할는지도 모른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느라 하루 직장을 쉬었다. 아이는 겅둥거리면서 장난감 칼로 보이지 않는 괴물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 마루 한쪽에 앉아 밀린 일을 뒤척이며 가끔 아이의 상대가 되어주고 아이가 휘두른 칼에 몇 대 맞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다 되어 오니 아이가 불안한 듯 묻는다. “엄마, 자고 나면 어린이집 가야 돼? 엄마 회사 가야 돼?” 혹시나 또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고 할까 봐 그렇다고 단호하게 대답해주었다.

아이가 시무룩해졌다. “해가 뜨지 않으면 엄마 회사 안 가도 되는데….” 이십여년 전에 본 드라마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침마다 회사 가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가 장난감 칼을 들고 베란다로 뛰어나가 해를 마구 찔러댄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아이들은 해가 뜨는 걸 싫어하고 아침마다 해는 떠서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아이를 깨워 억지로 밥 몇 술 떠먹이고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곧잘 눈물을 뺀다.

잠자고 있는 아이를 들여다보니 부쩍 키가 자란 듯하다. 여섯살 형님이 되었다고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종종 아기짓을 하고 그게 부끄러워 “아하, 이젠 형님이지”라고 말해 우리를 웃긴다.

무럭무럭 자라주어 기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초등학교 입학할 날이 멀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린이집에서처럼 종일 봐주지 않는다. 점심 먹고 귀가하면 부모가 퇴근해 돌아올 때까지 네댓 시간을 혼자 지내야 한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집에 없던 한달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텅 빈 집. 봄이었는데도 집안은 썰렁했다. 누군가 고요히 내 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어쩌면 너무도 외로운 나머지 아이는 빈방에 대고 다녀왔습니다, 혼잣말을 할는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아파트 열쇠를 목에 걸지 않아도 혼자 집을 지키는 아이들은 금방 티가 난다. 낯선 어른을 경계하고, 웃으며 건넨 인사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여차하면 뛰어내릴 기세로 엘리베이터 층수판 옆에 딱 붙어 서 있다. 유난히 검은 옷을 자주 입는 나를 볼 때마다 화들짝 놀라는 여자애도 있다. 가끔 외투 단추를 잠그지 않거나 모자나 목도리를 빼놓고 다니는 걸로 보아 그 애도 집에 혼자 있다 학원에 가는 듯하다. 아이를 돌봐줄 이가 없어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돌린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나도 그래야 할까? 집에서 혼자 할 일이라곤 컴퓨터 게임일 테니까. 어린이 게임이라도 수위가 너무 높다. 그뿐만 아니라 성인물 같은 눈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투성이다.

중학생이 되면 좀 나아질까. 외려 자신의 일에 대해 함구할는지 모른다. 우리도 그때부터 그랬으니까. 혼자만의 비밀을 갖기 시작했으니까. 시시콜콜 이야기하기 귀찮기도 하고 괜히 부모에게 걱정을 끼칠 수도 있으니까. 고민은 들어주지 않고, 보기만 하면 공부하라는 말밖에 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빈집으로 몰려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니던 길에 뚝딱, 수많은 고층건물들이 들어섰다. 겉으로 보기에 이곳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의 눈빛은 빈집 같은 걸까. 이젠 작가들까지도 실적을 내놓아야 한다. 실적이 없다면 운영비 일부를 지원받는 집필실 이용도 어렵게 되었다. 지금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들은 실적과 성과주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아온 우리의 탓이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괜찮아질까. 번쩍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섯살, 우리 아이가 곤히 자고 있다. 다행이다, 아직 여섯살이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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