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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폭력에 대한 관심 / 황현산

등록 2012-01-13 19:12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들끓던 여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닫게 되면, 그때 모든 학교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지옥이 된다
동네 편의점으로 아직도 못 끊은 담배를 사러 들어가는데, 나보다 먼저 가게에 들어간 중년 부인이 큰 목소리로 다급하게 전화를 한다. 너는 그 애들 이름만 문자로 보내주면 된다. 변호사하고도 상의를 했다. 지금 바로 고발해야 한다. 같은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한다. 부인의 자녀가 학교에서 집단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학교폭력에 사회의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으니 어머니는 이 기회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데, 아이가 주저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서 싸움 잘하는 순서가 첫째부터 꼴찌까지 정해져 있던 시기에, 늘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중고등학교를 다닌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것, 그러니까 자신의 불행이 어른들의 개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 아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높은 관심이 수그러들고 나면 아이가 당하게 될 고통은 두 배 세 배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외부의 조폭과도 연결되어 있던 몇몇 학생이 교무실에서 난동을 부렸다. 책상을 뒤엎고 유리창을 깨뜨렸다. 그 장면을 보고 한 교사가 기절을 했다. 그 교사는 후에 자기 형인 김용운 선생과 함께 <한국 수학사>를 쓴 김용국 선생이다. 선생은 우리 학교에 독일어 교사로 부임했지만, 수학과 영어와 세계사를 두루 가르친, 별명 그대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선생은 그 사건이 일어난 며칠 후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특별 강연을 했다. 이제는 기억 저편의 일이 되었지만, 폭력에 의지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도 했던 것 같고, 학교에는 학교의 권위가 있으니 그 권위를 인정해야 싸움 잘하는 사람들의 세계에도 권위가 성립한다고도 했던 것 같다. 사태의 긴급함과 심각함에 비추어 보면 좀 맥없는 말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후 이상하게 학교폭력이 고개를 숙였다. 그 폭력 학생들이 선생의 말을 이해하고 설득이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교내에서 널리 존경받는 한 선생이 자기들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어떤 연구 같은 것을 했다는 사실에 일종의 감동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에 대해 부쩍 높아진 관심이 부질없는 것일 수는 없다. 이 역시 맥없는 말이 되겠지만, 사회의 관심은 적어도 그 가해 학생들에게 자기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문제는 이 관심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한때 들끓던 여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닫게 되면, 그때 모든 학교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지옥이 된다.

이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을 폭력 일반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멘트를 처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 위해 깨부수는 것이 폭력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속도로를 시속 160㎞의 속도로 달리는 것도 폭력이고, 복잡한 거리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도 폭력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일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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