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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승진해서야 한 임신 “살쪘네, 편한가봐” 비수
[낮은목소리] 애 많이 낳으면 돈 준다? 너나 실컷 받으세요!

등록 2012-01-19 19:43수정 2012-01-20 11:45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직장인 임신부들의 눈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년 11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여성들은 평생 1.23명의 아이를 낳는다. 이는 조사 대상인 세계 222개국 가운데 217위에 해당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4개 나라 가운데에서는 꼴찌다.

경제개발과 여권 신장에 따라 과거보다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유럽의 선진국들에도 못 미치는 출산율은 분명 되짚어 봐야 한다. 저출산은 단순한 문화현상이 아니다. ‘노령화 사회’를 불러와 국가 경쟁력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저출산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임신부를 ‘온전하지 못한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그릇된 기업문화가 저출산에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직장을 관둔 여성 190만명 가운데 임신·출산·육아의 사유로 퇴사한 경우가 절반에 가까운 48.7%에 이른다.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대한민국 워킹맘 실태 보고서’를 보면 워킹맘들의 직장 내 가장 큰 고민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인사상 불이익’(42.4%)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직장 환경이 임신과 출산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이번 ‘낮은 목소리’는 직장에 다니면서 임신을 한 ‘예비 워킹맘’들을 만났다. 그들은 입을 모았다.

“둘째 갖는 건 꿈도 못 꾼다.”

일반사무직 김씨
입덧 때문에 하루에 배 한개…
‘유별나다’ 소리 듣기 싫어
힘든 내색 못하고 ‘끙끙’
우리는 ‘슈퍼우먼’이 아니다


#일반사무직 김현민(30)씨

오늘 점심도 사무실에는 나 혼자다. 집에서 싸온 ‘락앤락’통에서 배 한 쪽을 꺼내 먹는다. 벌써 보름째다. 입덧이 심해 하루에 배 한 개를 나눠서 먹는 게 내 식사의 전부다. 나는 임신 5개월째다. 3개월 접어들어서 입덧이 심해졌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토를 했다. 후각이 엄청나게 예민해져서 사무실 직원들이 뭘 먹고 왔는지 다 알 수 있다. 남자 직원들의 커피 냄새가 섞인 담배 냄새는 ‘악취’ 수준이다. 이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김현민씨는 입덧이 심한가보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해주는 척 던지는 한마디에도 괜히 신경이 쓰인다. 꼭 “너 참 유별나다”라는 가시 돋친 말이 숨어 있는 거 같다. 그래서 힘든 내색을 더 못하게 된다. 끊어지는 듯한 허리와 골반 통증에 택시로 출퇴근한 지는 한참됐다. 그나마 집이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멀었으면 직장 다니는 걸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근무시간의 조정 같은 건 없다. 법적으로 임신부의 탄력근무제를 보장해주었으면 좋겠다.

처음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렸을 때, 다들 축하해줬다. 하지만 내 업무는 바뀌지 않았다.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내가 아니면 진행이 안 되는 업무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심해지는 입덧과 부어오르는 다리. 식은땀이 저절로 났다. 그렇다고 쉴 수도 없었다. 중간중간 병원을 다닐 땐 휴가를 내고 갔다. 자주 휴가를 쓰니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장은 휴가신청서에 사인을 할 때마다 “프로젝트 잘되고 있지?”라고 물었다.

이제는 애를 낳고 나서가 걱정이다. 3개월의 출산휴가가 나오지만 그 뒤가 더 큰일이다. 마땅히 애를 봐줄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육아휴직을 쓰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법적으로 보장만 해주면 뭐하나. 육아휴직은 곧 퇴사나 마찬가지다. 내 자리를 누군가는 채워야 하는데, 복직하면 그 사람을 밀어내고 내가 갈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회사를 관두고 외벌이가 될 경우 집 살림살이는 더 빡빡해질 것이다. 어떡하든 직장엔 계속 다녀야 하는데….

회사 언니들에게 방법을 물어보고 있다. 대부분 육아에 시어머니,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다. 여의치 않으면 도우미를 쓰라고 했다. 하지만 남의 손에 애를 키우기는 싫다. 지금 임신하고 직장에 다니니 둘째 생각은 엄두도 안 난다. 아마 더이상의 임신은 없을 것 같다. 직장에 다니면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는 건 영화 속 ‘원더우먼’이나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나라가 애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애를 낳는다고 결정했으면 사회 안팎으로 지원을 해주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가 죄를 진 거 같다.

(김현민씨는 현재, 프로젝트를 마치고 탈수와 과로증세가 와 병가를 내고 요양중이다.)

백화점 판매직 서씨
육아휴직 썼다고 소문나면
“곧 퇴사한다”로 받아들여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들
‘세상 물정’ 모르고 만든 듯

임산부
임산부
#백화점 판매직 서인영(32)씨

오늘도 나는 서 있다. 백화점 일이란 게 그렇지만, 내 일과의 절반은 서서 지낸다. 임신 7개월째, 만삭의 몸이다. 화장품 판매 일만 10년째다. 지금은 매니저다. 매니저가 되고 나서 임신 계획을 세웠다. 평사원이었을 때는 눈치가 보여 임신할 엄두를 못 냈다. 임신에 성공했을 때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고민은 깊어만 갔다. 출산휴가 3개월 쓰고 돌아와서가 문제다. 육아휴직? 그건 사표나 마찬가지다. 생각을 해보라. 내가 1년간 쉬면 후배를 승진시켜 업무를 맡긴다. 복귀하면 나는 그 후배 밑으로 발령이 난다. 다니지 말라는 소리다. 주변에서도 “누가 육아휴직 냈대”라는 소문이 돌면 “누구 그만뒀구나”라고 받아들인다. 직장을 관둘 순 없다. 맞벌이해야 겨우 살아나가는 살림에 누구 하나 직장을 관두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출근시간 조정은 없다. 다만 법적인 문제가 있어서인지 야근은 빼준다. 그것도 강제로 못하게 하는 건 아니다. 초과근무 시간을 보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임신부들에겐 올리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칼퇴근은 못한다. 매니저로서 칼퇴근을 어떻게 하나. 백화점 문닫을 때까지 있기가 일쑤다. 매장 동생들이 “언니 좋겠어요. 저도 빨리 승진해서 애 낳고 싶어요”라는 말을 할 때면,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다. 한번은 백화점 직원이 “인영씨 요즘 편한가봐, 살 많이 쪘네”라고 농담을 건넸다. 할 말이 없었다. 외국은 직장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격려금도 나오고 출산, 양육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던데…. 솔직히 사람들이 과거보다 좀더 풍족하게 살면 뭐하나. 애 낳고 키우는 건 어떻게 보면 과거보다 더 힘들어진 거 아닌가.

나도 다니다가 정 힘들면 육아휴직 쓰고 바로 퇴사할 거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정부에선 애 낳으라고 각종 정책 발표하는 거 같던데, 내가 보기엔 실효성 없다. 일단 직장 다니면서 임신, 출산 경험하면 애 낳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다. 직장 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아무리 좋은 정책 내놓아봐야 공염불이다. 아마 상대적으로 출산, 육아 스트레스가 덜한 공무원들이 만든 정책이라 그런가 싶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인터뷰를 마친 날, 전국 유명 백화점들이 설 연휴기간에 설 당일만 휴점하고, 대형마트는 휴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이씨
CCTV 감시 속에 쉬지도 못해
근무시간 조정 없는 일과 연속
학부모들도 은근 눈치 주고
원장은 “대체 인력 구해놔라”

#어린이집 보육교사 이승연(28)씨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내 직업이다. 나는 한 구립 어린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한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일하니까 임신부가 일하기 수월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전혀 아니다. 현재 22명의 6살 아이들을 보육교사 2명이 돌보고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작년 8월에 우연히 임신 사실을 알았다. 계획임신이 아니었기에 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낳기로 결심했다. 3개월쯤 되자 입덧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아침 당직이 있는 날이면 오전 7시30분까지 출근했다. 임신했다고 해서 출근시간을 조정해주진 않는다. 아침에 도착해서 아이들 간식 만들다가 토하기가 일쑤였다. 허리와 무릎이 아파 좀 누워 있으려고 하면 천장에 붙어 있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생활하는 것을 생중계한다고 달아놓은 것이다. 그러다가 점심 먹일 시간이 돼서 주방에 들어가면 음식 냄새에 또 구토를 했다. 정 힘들면 아이들 교구재를 모아놓는 창고에 가서 책장에 기대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걱정돼 5분도 채 쉬지 못했다.

아침 당직이 있는 날엔 빨리 퇴근을 해서 병원에 들렀다. 매주 있는 야근은 빼주지 않았다. 아이들을 외부에서 통솔해야 하는 야외학습도 매번 동참했다. 한번은 야외학습 가면서 버스에서 역주행 방향으로 서서 레크리에이션을 지도했다.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아이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임신부에게 더 박한 거 같다. 임신부라는 항변은 전혀 먹히질 않는다. 각종 초과근무에 시달리다 보니 한 선생님은 지난달에 유산을 하고야 말았다. 이 선생님은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도 2살 미만의 아이들 반을 맡는 등 전혀 배려가 없었다.

육아휴직은 상상조차 못한다. 심지어 3개월간의 출산휴가도 눈치가 보인다. 대체교사를 쓰게 되는데 ‘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학부모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 2개월만 쓰고 복귀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들리는 얘기로, 어떤 어린이집의 원장은 “대체교사 구해놓고 휴가 가라”며 으름장을 놓았단다.

직장에서의 굴욕은 그렇다 쳐도, 같은 엄마끼리 야속하게 나오는 건 정말 못 참겠다. 어떤 학부모는 교사들이 임신을 해서 애들에게 짜증을 부린다며 불만을 접수하기도 했다. 한번은 평소처럼 아이의 잘못된 습관을 적어 보냈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선생님이 임신해서 예민한데 우리 애까지 그래서 죄송하네요.” 가슴을 열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끔 뉴스에서 다출산 장려금 준다는 소식이 나온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애 많이 낳으면 돈 준다고요? 당신들이나 실컷 받으세요!

이정국·임지선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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