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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정책이 심리학과 만났을 때

등록 2012-01-30 19:56수정 2012-02-01 05:10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다른 사람들과 전기소비량을 비교해
‘질투심’을 유발하는 특별한 고지서,
이로써 전기소비가 2% 줄어들었다
#1. 질투심을 이용하여 에너지 절약을 유도할 수 있을까? 2009년 <뉴욕 타임스>는 이러한 흥미로운 시도를 하려는 미국 공무원의 노력을 소개했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시는 3만5000가구를 무작위로 선정해, 특별히 고안된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내는 실험을 했다. 이 고지서에는 비슷한 크기의 집에 사는 100가구의 소비량 평균과 자기 집의 전기소비량을 비교한 수치가 그래프로 알기 쉽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전기 절약에 우수한 20가구의 사용량 수치를 보여 ‘질투심’을 유발한다. 자신이 비슷한 부류의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전기를 소모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 불편하게 느껴 자연스럽게 전기를 절약하려고 하는 심리를 이용했다. 6개월 만에 새크라멘토시는 일반 고지서를 받는 가정에 비해 ‘특별한’ 고지서를 받는 가정이 평균 2%의 전기를 더 절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와 유사한 시도는 시애틀과 시카고 등 많은 도시로 확산되었다. 지난해 우리 정부는 과다 전력사용으로 고민했다. 만약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나라 전 가정에서 1%씩만 전기를 절약한다면?

#2. 의사와 약속을 하고는 진료시간에 늦거나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엄청난 재정이 낭비된다는 것이 영국 보건당국의 골칫거리였다. 영국에서는 1차 진료의 비용을 국가재정으로 부담하기 때문이다. 매년 600만건의 진료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연간 1조원 이상의 예산이 낭비되었다. 2011년 영국 보건당국은 우리나라에서도 100만권 넘게 팔린 <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가 운영하는 인플루언스앳워크와 비디오(BDO)라는 두 개의 컨설팅사와 함께 팀을 이루어 연구를 진행해 해결책을 찾았다. 첫째, 병원에서 간호사가 다음 진료 일시를 예약카드에 적어주던 것을, 이들은 빈 카드를 환자에게 준 뒤 간호사가 불러준 약속 일시를 환자가 직접 쓰게 했다. 해야 할 일을 자신이 종이에 직접 쓸 경우 이를 기억하고 실천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그래서 자신의 꿈을 종이에 적는 것은 효과가 있다!) 둘째, 영국 병원들은 환자 대기실에 “지난달에는 5%의 환자분들이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와 같이 ‘부정 수치’를 붙여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역효과를 낼 뿐이었다. 대기실의 환자들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환자들도 꽤 있구나…” 하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컨설팅 팀은 약속을 잘 지키는 환자 수를 보여주는 ‘긍정 수치’로 바꾼 그래프를 내걸었다. 이 두 가지 조처로 환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비율은 무려 31.4%나 감소했다. 영국 국립보건국 소속 보건경제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이 조처를 영국 내 모든 병원에 확대할 때 매년 472명의 의사를 추가로 고용할 수 있다.

엄청난 정책홍보 책자들, 판에 박은 구호와 캠페인, “~해야 한다”는 이상적 당위론으로 가득한 정책연구 보고서들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금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을까. 전기절약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자발적으로 전기절약 운동에 동참해주실 것”을 부탁하는 ‘순진한’ 구호로 연결하고 전기절약 실천 결의식 등의 이벤트를 벌이는 일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부는 시민의 심리를 이해하고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이성적 주체로 가정했던 전통 경제학이 심리학을 만나면서 감정을 지닌 인간의 행위를 새롭게 해석하는 행동경제학이 최근 각광을 받듯이 정책이 심리학과 만나는 ‘행동정책학’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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