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가
11개의 충치들을 다 갈고도
내 식성은 바뀌지 않아
그 베이커리를 출입한 지 20년…
내 식성은 바뀌지 않아
그 베이커리를 출입한 지 20년…
그 베이커리 앞을 지나칠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이 번갈아 들곤 했다. 첫 번째는 아버지, 덜컥 둘째가 들어서는 바람에 엄마 젖을 일찍 떼게 된 내게 젊은 아버지는 카스텔라를 사서 조금씩 떼어 먹였다. 요즘 엄마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딱딱한 과자도 종종 이로 잘게 씹어 먹였던 모양이다.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초등학교 1학년 건강검진표의 충치수 난에 눈을 의심할 숫자가 적혀 있었다. 11. 젖니의 반 이상이 충치였다는 뜻이다.
유년의 선명한 기억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치통으로 다들 자는 밤에 깨어 쓸쓸히 혼자 새벽을 맞았다. 치과에 치료를 받으러 갔지만 한눈에도 무시무시해 보이는 치과 장비에 놀라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카스텔라가 아니라 분유만 먹었대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분유 속에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많은 당분이 들어 있다. 생후 한 달 된 아기가 120㎖씩 하루 여섯 병의 분유를 먹는다면 대략 50g의 당분을 섭취하게 되는 셈이다. 우리는 너무도 빨리 단맛을 안다.
밑도 끝도 없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았느냐’라는 말도 떠오른다. 어린 시절 읽은 책의 한 구절인지도 모르겠다. 그 말이 사투리가 섞인 가느다란 남자의 음성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 거나하게 취해 일장훈계를 늘어놓던 아버지에게서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뜻과는 전혀 다르지만 실제로 울면서 빵을 먹어본 적이 있다. 향긋한 밀향과 다디단 단팥소 맛에 섞이던 찝찔하던 눈물의 맛. 맛도 맛이려니와 그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좀 우스꽝스러웠다.
열한 개나 되는 충치들을 다 갈고도 단맛을 좋아하는 식성은 바뀌지 않아 어느 대학가의 와플과 빙수가 맛있는지 몇 시에 어느 빵집의 갓 구운 식빵이 나오는지 정도는 꿰게 되었다. 홍대의 그 베이커리도 출입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우리 아이들도 그 빵과 같이 자랐다. 어느 빵집보다도 먼저 우리밀을 쓰고 재료도 신선해 믿을 만했다.
그 베이커리가 문을 닫던 날은 마침 휴가 중이었다. 가게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매일같이 그 앞을 지나치고 일주일에 두어 번 빵과 과자를 구입했던 나로서는 홍대와 함께한 내 역사의 페이지 중 한 페이지가 닫히는 기분이었다.
모든 이에게 가게 문이 활짝 열려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단맛이 그리워 지나치다 우연히 들른 이들이 비싼 빵과 과자값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계산대는 늘 종업원들이 지키고 있어서 단골이라고 알은체도 하지 않고 덤도 없었다. 그런데도 다디단 슈크림 하나를 사들고 나올 때면 기운이 났다. 가끔 왜 이렇게 비싼 걸까, 재료비 때문일까, 라고 속이 상하기도 했는데 천정부지로 오르던 임대료도 한몫했던 모양이다.
곳곳에서 대기업 체인들의 가게가 눈에 띈다. 빵집도 예외는 아니다. 집으로 가는 골목에도 두 개의 빵집이 나란히 서 있다. 골목 빵집 옆에 느닷없이 대기업 체인의 빵가게가 생기던 날, 개업을 축하한다고 세워둔 고무풍선이 미친 듯 춤을 추는 동안 동네 빵집 안 젊은 부부는 망연자실 서 있었다. 기세에 눌려 문을 닫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2년이 다 되도록 빵집은 건재하다.
다행히 그 자리에 대기업의 빵집이 들어서지는 않는다고 한다. 단맛은 때때로 유혹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우리 삶에 활력을 준다. 다디단 그 맛. 단맛 뒤에서 우는 이들이 없기를. 눈물 젖은 빵, 그 빵맛은 그리 권할 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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