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좋은 것이 좋다는 사회에서
나쁘다고 말하는 교수는
낙원의 악마처럼 보인다
나쁘다고 말하는 교수는
낙원의 악마처럼 보인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상영되면서 법조계가 조금 긴장하는 눈치이지만, 정작 그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의 진원지였던 대학과 교수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나는 그 사건에 대해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의 내용을 알지 못하지만, 대학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처지라, 이 나라의 다른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그 문제의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교수사회에서 가끔 듣는 농담으로, 학위논문을 쓰려고 5년 이상 외국에 나가 있던 젊은 연구자는 한국 땅에 들어와서도 귀국하는 데 3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귀국을 마쳤다는 말은 한국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먹지 않는다는 뜻도 되고, 말끝마다 ‘미국은’, ‘프랑스는’을 덧붙이지 않는다는 뜻도 되고, 학회 같은 데서 자기 논문의 주제와 방법을 내세우며 적절하기도 하고 부적절하기도 한 긴 질문을 하여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그는 그렇게 한국 사회에 적응한다.
젊은 연구자의 귀국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그가 오랫동안 풍속이 다른 외국에서 살았던 사정이나,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학문 연구의 본질적인 성격에도 그 원인이 있다. 공부하는 일에서 독창적인 사고는 어떤 생각을 극단적으로 밀고 갈 때에 자주 얻어지며, 그렇게 얻어진 사고는 이전의 사고체계와 크게건 작게건 단절된다. 천동설의 세상에 지동설은 거대한 사고의 단절을 불러온다. 자유시나 산문시를 설명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내재율의 개념이 실은 공허한 개념이며 그 말이 만들어진 내력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누군가 주장하면 문학의 설명체계에 작은 단절을 불러온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한 사람을 사회에서 단절시키기도 한다.
대학에는 가끔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신의 학문세계와 일치하지 않을 때 견디지 못하는 교수들이 있다. 동료 교수가 고등학생용 외국어 참고서를 썼는데 그 문법 설명이 최근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파면을 주장하며 서명운동을 벌인 교수도 있고, 시험 답안지에 한자를 썼다고 해서 취업까지 결정된 제자의 학점을 주지 않은 한글전용론자 교수도 있다. 그런 교수와 학교생활을 같이 하며 학과를 같이 운영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도 성찰하지 않는 관행이 그렇게도 많고, 좋은 것이 좋다는 것이 어디에나 통하는 진리여서 좋은 것이 너무나 많은 이 사회에서 좋다는 것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교수는 낙원의 악마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나만 하더라도 어느 교수를 매우 존경하면서도 그 교수가 같은 과 소속이 아닌 것을 크게 다행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교수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늘 공부에 전력을 기울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생활에서도 염결한 태도를 지킨다. 그들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소금과 같아 학문 풍토의 부패를 막고, 소크라테스처럼 말하면 태만한 정신에 쉬파리처럼 귀찮게 따라붙어 새로운 각성을 촉구한다. 대학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운영을 계속하는 것은 그런 교수들을 보호하자는 데도 목적이 있다. 학문의 보호는 무엇을 보호하는 것이며, 학문의 자유란 무엇을 위한 자유일까.
비단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다. 삶과 학문의 온갖 시도를 수용하는 아량이 문제되고, 이 삶에 대한 지치지 않는 성찰이 문제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보려는 용기가 문제된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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