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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박근혜와 독이 든 사과

등록 2012-02-15 19:36수정 2012-04-06 14:13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신문의 지면 계곡 한편에서 하이에나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 우리는 권력의 황혼이 도래했음을 안다. 해바라기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도할 때 권력의 선연한 이동과 새로운 태양의 출현을 실감한다.

“정치적인 인물이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부처의 수장으로 내정되면서 국민의 편익이나 방송·통신 산업의 발전보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이 좌지우지….” 최근 사퇴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4년 업적을 평가한 신문 기사 중 한 대목이다. 어느 한 군데 틀린 말이 없다. “잇따른 정책실패와 편파적인 정책추진에 따른 인과응보”라는 춘추필법의 직필이 서릿발처럼 매섭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이렇게 썼다는 점이다.

최시중과 조중동이 어떤 관계였던가. 이 정권을 함께 세운 동지요, 4년 내내 끈끈한 우정을 과시해온 친구요, 서로 편의를 봐주며 이익을 주고받은 동업자 사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책’의 근원도 따지고 보면 조중동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몰락한 권력자를 떠나보내는 행장기(行狀記)는 가혹하고 매몰차다. 특혜종편을 위한 노고는 과거지사일 뿐 은공을 기리는 의리 따위는 없다. 그는 오히려 ‘종편 0%대 시청률’의 원흉으로 기억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조중동한테서도 언젠가부터 변방의 북소리 신세가 됐다. 지면의 외딴 구석 자리로 ‘위리안치’돼 간신히 숨만 쉬고 있을 뿐이다. 그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게 새로운 권력에게 해가 됨을 이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심지어 친이계를 두고 “반성할 줄 모르는 폐족”이라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을 만큼 큰 죄를 지은 대역죄인’은 누구를 말함인가. 인터넷과 트위터 등에 떠도는 ‘가카’에 대한 어떤 조롱과 비방도 이 서늘한 단죄 앞에서는 빛을 잃고 만다.

사실 ‘실패한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은 바로 조중동이다. 이들은 진작부터 이 대통령이 “모조품 액세서리”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를 빛나는 보석이라고 추어올렸다. 모조품도 나름 보석 구실을 할 수 있었으나 조중동은 그것마저 가로막았다. 뒤돌아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본격적인 실패의 길로 접어든 분수령은 촛불사태였다. 조중동은 끊임없이 이 대통령의 나약함을 꾸짖고 강경대처를 주문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생각을 버려라, 대통령은 ‘칼’이 되라, 자기들은 ‘칼집’이 되겠노라고 부추겼다. 실용은 줏대 없음으로, 타협은 나약함으로, 포용은 굴종으로, 대북 화해는 변절이라며 꾸짖었다.

이 대통령이 저지른 최대의 실책은 바로 이런 악마의 속삭임을 순순히 따른 일이다. 칼이 되라고 해서 칼춤을 추다 보니 스스로를 베고 말았다. 그런데 칼집이 되겠다던 이들은 슬그머니 다른 칼의 칼집으로 변신해 버렸다. 지금쯤 이 대통령은 ‘멘토’를 잘못 만난 사실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 몰락의 근본 원인이 이런 엉터리 처방전을 믿고 따른 결과임을 깨닫고나 있을까. 그 복잡한 심사를 헤아릴 길은 없다. 하기야 그 정도의 성찰 능력만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남루한 처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중동 사전에는 ‘실패한 대통령’은 있어도 ‘실패한 조중동’이란 없다. 오히려 새로운 권력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멘토를 자처한다. 그의 든든한 우군이자 동반자임을 다짐한다. “친박-친이 경계를 허물고 보수세력을 대동단결시키라”는 주문은 어느 틈엔가 폐족 친이계의 정계은퇴를 촉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박근혜 위원장의 잠재적 최대 라이벌인 안철수 교수의 모호한 행보와 경륜 부족에 대한 날선 비판도 박 위원장에게는 큰 힘이 된다.

하지만 박 위원장에게 조중동의 도움은 독이 든 사과와 같다. 좌클릭을 경계하는 훈수는 낡은 감수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강조는 온기 없는 원칙론이며, 색깔론에 기초한 편가르기도 철 지난 유행가사와 같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가 반면교사로 증명한다. 그런데도 그 노래는 끊임없이 울려퍼진다. 그리고 박 위원장과 새누리당이 그 단맛에 빠져드는 모습에서 또다른 비극을 예감한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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