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논쟁으로 검찰 조직 전체가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의 검찰 갈등은 훗날 역사에 전대미문의 권력투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작두 위에 올라탄 검찰”이 작두에 발을 베이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 피멍이 들고 뼛속까지 후유증이 남게 됐다.
최근 검찰 안에서 벌어지는 ‘기소 논쟁’을 지켜보면서 문득 조선 시대의 ‘예송논쟁’을 떠올렸다. 효종이 숨진 뒤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 입어야 할지 3년 입어야 할지 갑론을박한 사건 말이다. 사실 두 논쟁 모두 백성들의 삶과는 관련이 없는 ‘그들만의 전쟁’이요 치열한 권력투쟁이다. 예송논쟁이 예법 문제로 포장돼 있었을 뿐 실제 알맹이는 왕의 정통성에 관한 사건이었듯, 지금의 기소 논쟁도 청와대에 대한 정면 조준-방어가 핵심이다. 1년 상복이 맞는지 3년 상복이 맞는지, ‘날치기 기소’가 옳은지 ‘항명’이 옳은지 일반 국민은 역시 알쏭달쏭하고 헷갈린다.
그런데 싸움의 품격은 옛날보다 더 떨어졌다. 과거 선비들은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최소한의 명분과 의리는 지켰다. 반면에 검찰은 ‘상갓집 소동’에서도 드러났듯이 예의도, 체면도, 체통도 모두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사실 그 살벌한 전제 왕정 시대에도 예송논쟁은 죽임을 당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이 끝났으나, 지금의 검찰 막장 드라마는 피비린내 나는 하드코어로 막을 내릴 조짐이다.
이번 기소 논쟁을 지켜보면서 드는 가장 큰 의문은 ‘법이 직업인 사람들의 싸움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가’다. 법조인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게 법과 원칙, 정확성, 엄밀성 따위의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검찰청법을 비롯해 관련 법들은 가지런하지 않고, 원칙은 들쑥날쑥하며, 절차는 부정확하고 애매하다. 법과 원칙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법으로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소의 적절성 문제를 놓고도 고개가 계속 갸웃거려진다.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간에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을 법원으로 가져가면 과연 제대로 유죄판결을 받아낼 수 있을까. 윤석열 총장은 전적으로 정의롭고 옳으며, 이성윤 지검장은 ‘청와대 방탄벽’이 되기 위해 검사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모두 내팽개친 인물일까. 아니면, 수사 검사들이 수사 결과가 미흡한데도 오기를 부려 기소를 강행하려는 걸까. 의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정확한 수사 내용을 알 수 없으니 판단할 길은 없다. 다만 그동안의 검찰 수사 흐름을 보면 기소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숱하다.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만 해도 10개월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번도 직접 대면수사를 하지 않고 기소를 하는 게 정상적인지 의문이다.
이성윤 지검장은 어차피 위아래의 협공에 당해낼 재간이 없는 상태다. 실제로 윤석열 총장과 그를 따르는 검사들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13명을 무더기 기소했다. 수사 결과에 자신이 있으니 기소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것은 있다. 기소파 검사들은 결과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무리한 기소를 해놓고 나중에 나 몰라라 해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사안 자체가 국가의 근본을 뒤흔들 정도로 위중한 사안이다. 앞으로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고 무리한 기소라는 결론이 나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수사 검사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실명으로 말이다.
검찰이 이 지경까지 간 것은 결국은 청와대의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검찰의 전횡에 속수무책 당해온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인사를 비롯해 검찰을 다루는 실력과 솜씨가 너무 부족하고 투박하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의 풍향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힘으로 수사를 막는 청와대’ ‘권력한테 핍박받는 윤석열 총장’의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것이 과연 바람직한 행보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검찰이다. 단지 윤석열 사단이나 이성윤 지검장만이 아니라 검찰 조직 전체가 그렇다. 지금 검찰의 갈등은 훗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정의와 불의의 싸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전대미문의 검찰 내부의 권력투쟁, 그리고 검찰이 정치에 직접 뛰어들었을 때 어떤 비극적 결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통렬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지난해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수사에 착수했을 때 이 칼럼에서 “작두 위에 올라탄 검찰”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런데 검찰은 작두에 발을 베이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 피멍이 들고 뼛속까지 그 후유증이 남게 됐다. 너무나 씁쓸한 현실이며 국가적 불행이다.
김종구 ㅣ 편집인
kjg@hani.co.kr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SBS 8시 뉴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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