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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정치적 주술’과 4월 총선

등록 2020-03-11 18:38수정 2020-03-12 02:08

야당과 보수언론은 과학으로 말해야 할 때 주술을 외우고, 합리적 이성으로 대처해야 할 대목에서 허무맹랑한 선전선동을 일삼는다. 이들의 눈은 코로나 사태를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스크로 가려진 입가에서는 숨은 미소가 흐르고 있는 것만 같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심재철 원내대표. 연합뉴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심재철 원내대표. 연합뉴스

“재변이 생김은 인사(人事)의 잘못됨에 있고, 재변을 해소하는 길은 수성(修省)을 실답게 하기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조심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낮이나 밤이나 경계하는 마음을 갖고 감히 태만하거나 소홀함이 없이 정사를 돌보셔야 합니다.” 조선조 중중 20년(1525년) 3월, 평안도 등에 역병이 번졌을 때 대사간 채침 등이 왕에게 올린 상소문의 한 구절이다. 이른바 ‘공구수성’(恐懼修省). 가뭄, 홍수, 역병 등 자연재해는 하늘을 대신해 이 땅을 통치하는 왕의 책임이니 마땅히 왕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두려워하며 수양하고 반성하라는 뜻이다.

신하들이 왕에게 공구수성을 요구한 것은 왕권 견제의 뜻도 다분하지만,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 임금이 솔선수범해 ‘근신 모드’로 들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왕의 책임을 묻는 수준이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고대 부여 왕국에서는 역병이 돌면 왕을 죽여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흉년으로 기근이 이어지자 “왕을 없애면 풍년이 든다”며 모반을 계획한 사건도 있었다. 앞엣것이 일종의 ‘주술’이라면 뒤의 모반은 자연재난의 ‘정치적 활용’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둘을 조합한 교묘한 ‘정치적 주술’ 행위가 21세기 문명사회 한복판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야당과 보수언론이 보여온 태도가 그렇다.

코로나 대처 과정에서 정부가 저지른 실책과 잘못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마스크 수급 대책의 혼선 등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성급하게 “조기종식”을 입에 올린 것도 ‘공구수성’에 어긋난다. 그런데 지금 야당이나 보수언론의 태도는 이런 차원의 비판과는 궤를 달리한다. 과학으로 말해야 할 때 주술을 외우고, 합리적 이성으로 대처해야 할 대목에서 허무맹랑한 선전선동을 일삼는다. 이들의 눈은 코로나 사태를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스크로 가려진 입가에서는 숨은 미소가 흐르고 있는 것만 같다. 과거든 현재든 역병이 돌면 집권층은 궁지에 몰리게 마련이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일차적으로 노리는 것은 다음달 총선이다.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역병을 활용한 정치적 모반의 현대판인 셈이다.

우리 선거 역사를 뒤돌아보면 정권이 출범한 뒤 2~3년쯤 지나고 나서 치르는 선거에서는 대체로 여당이 고전했다. 그 기간 이런저런 국정운영 실책이 나오고,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이 쌓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3년 뒤쯤 치러지는 21대 총선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의 3년간 성적표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고, 유권자들의 실망감도 커졌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여당은 ‘정권심판론’의 프레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눈을 야당 쪽으로 돌려보면 더욱 쓴웃음이 나온다. 선거라는 게 한쪽이 잘해서 승리하기보다는 다른 한쪽이 잘못해서 어부지리를 챙기는 게 기본 속성이긴 하지만 지금의 야당은 해도 너무했다. 합리적 비판, 건설적 대안 제시보다는 현 정부에 대한 혐오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정치적 주술 행위에 몰두한 게 지난 3년간 야당의 일관된 전략이었다. “좌파 독재의 완성” “중국 사대주의” “김정은 대변인” 등 주문의 내용도 다양하고 치졸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지금의 야당이 ‘차떼기 정당’의 오명에 휩싸였을 때는 그나마 천막당사라는 이벤트라도 기획하고 “다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총선 승리로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오만에 가득 찬 구호마저 서슴지 않는다. 야당이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염원도 물거품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그 정점에 있다. 그의 편지는 태극기 부대와 야당의 합체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이 부활하겠다는 선언이며, 역사의 물줄기를 다시 과거로 돌리겠다는 선전포고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이야말로 과거 가장 뛰어난 정치적 주술사였다. 알맹이 없이 환영을 쫓는 주술행위에 얼마나 많은 유권자가 빨려 들어갔던가.

역병이 번졌을 때 주술행위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듯이 정치의 세계에서도 주술행위는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잘잘못을 따져 엄히 심판할 것은 심판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합리적인 이성이 정치 불신과 희망 부재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이다.

김종구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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