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범 삼성에스원 임직원상담실 임상심리전문가
무엇이 옳은가를 묻기보다는
뭘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기업·사회 소통문화 확대하고
피해자 도울 창구 개발해야
뭘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기업·사회 소통문화 확대하고
피해자 도울 창구 개발해야
긍정심리학의 대가라 불리는 마틴 셀리그먼과 행복전문가로 알려진 에드 디너 교수는 ‘매우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논문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인식하는 상위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기술하였다. 또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많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 내 대인관계 문제가 이직 사유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직장 내 따돌림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직장인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개인적인 대처 방법과 조직문화적 차원에서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소견이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직장 내 따돌림이 발생할 때 당사자는 현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혼란감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이런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다’ ‘다른 곳에서는 안 그랬는데’와 같은 혼란감은 강한 충격으로 인식된다. 또 본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 문제의 원인이 본인에게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결국 ‘난 틀리지 않았어, 바꿀 필요 없어’와 ‘내가 틀린 건가, 바꿔야 하나?’ 같은 두개의 사고가 대립되는 양상으로 바뀐다.
하지만 본인이 처한 직장 내 따돌림 현상이 ‘모 아니면 도’식의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라는 걸 조언하고 싶다. 이분법적 사고와 자책은 점차 회사를 싫어하게 되고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정보에 둔감해지거나 과도하게 경계하는 모습으로 변질된다. 즉, 직장 내 따돌림 경험자는 ‘따돌림을 유발하는 개인’이기도 하지만, 순환론적 체계에서 보면 우연히 어려움을 접한 개인이 ‘점점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으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일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이 직장 내 따돌림을 경험하고 있다면,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직장 내 따돌림을 경험한 사례들을 보면, 조직 내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보들이 본인에게만 전달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반면 직장 내 따돌림의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 대해 ‘상황 및 맥락 파악이 늦고, 경직되어 있으며, 자신의 업무에만 충실하다’는 비난을 쉽게 내어놓는다. 그렇다면 어느 쪽의 의견이 맞는 것일까?
만일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기대했다면 필자는 관점의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즉 ‘누가 옳은가?’에 대한 접근이 아닌,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길 권하고 싶다. 당신이 틀렸기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자는 의미이다. 그 첫걸음으로 조직 내 상황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고 민감성을 발휘해보자. 이러한 민감성은 현재까지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앞으로 발생할 부정적 피드백들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실수를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하나 관계의 문제를 업무로 해결하려 하지는 말아야 한다.
당신은 분명 능력 있고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사실은 당신에게 이 회사가 필요한 곳이 되는 것이다. 고된 노력을 통해 성과로써 통쾌함을 느낀다 하더라도(실제 통쾌함을 느낄 만큼 인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어느덧 폄하되어 있는 주변 반응은 당신을 더욱 지치게 만들며 무기력감을 유발할 것이다.
몇 가지 대처에 대해 기술하였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또한 대화나 항변의 기회 자체가 박탈된 사람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게다가 직장 내 따돌림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로만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토로하고, 변화를 시도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협조자가 필요하다.
지난해 조정대회에 참여하는 예능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이때 필자에게는 ‘콕스’의 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제 노를 젓지는 않으나 구성원들을 격려하고 소통하며 조율하는 가운데, 방향을 유지한다. 이는 직장 내 따돌림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최근 기업에서는 상담 및 임상 전문가들이 상주한 자체 상담실이 운영되는 곳이 늘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노력들이 구성원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접근이 아닌, 비밀 보장을 전제로 한 소통의 창구로 활용되는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기업이 매우 부족한 게 현실이며, 초기 정착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기대와 욕구로 인해 다양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경직된 조직문화와 소통의 부재가 일반화된 경우, 구성원들은 쉽게 좌절감을 느끼고 공격성을 표출하게 된다. 또한 누군가를 따돌리지 않으면 본인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구성원들을 가해자 혹은 방관자로 만들게 된다. 따라서 기업과 사회는 지속적인 소통문화 확대와 함께, 직장 내 따돌림에 대한 인식전환의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직장 내 따돌림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창구의 개발이 요구된다.
안준범 삼성에스원 임직원상담실 임상심리전문가
연재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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