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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부러진 약속과 부러질 맹신 / 박순빈

등록 2012-03-08 19:22수정 2012-03-08 23:51

박순빈 논설위원
박순빈 논설위원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 약화는
맹신에 바탕을 둔 이명박 정부의
마구잡이 질주 때문이다
“취임 첫날과 마찬가지 각오로 임기 마지막까지 임하겠다.”

올해 1월5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위원들과의 신년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 뒤에도 이 대통령은 같은 취지의 발언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감이 틀리길 바랐지만 역시 아니었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기어이 발효하기로 했다. 여당조차 신중론을 펴는 수서발 고속철도(케이티엑스) 노선 운영사업의 민영화 계획도 슬금슬금 밀어붙이고 있다. 평화의 섬 제주에 해군기지를 세우겠다며 엊그제는 구럼비 바위를 발파했다. 도대체 이 무모한 질주를 언제쯤 멈출까?

논란을 빚으면서도 이명박 정부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정책을 밀어붙인다. 자유무역협정은 ‘경제영토 확장을 통한 국익 증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안정적 해양수송로 확보와 지역 발전’, 케이티엑스 민영화는 ‘공공서비스의 효율성과 국민편익 제고’ 등이다. 이런 좋은 명분에도 반발 여론이 거세다. 타당성과 실효성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장두노미’(藏頭露尾)라고 했다. 쫓기는 타조가 머리는 감추었는데 꼬리는 드러나 절절매는 모습을 뜻한다. 진실을 숨기려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가 이미 드러나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빗대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의 요즘 태도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조급증에 걸린 듯 너무 서두른다.

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출범 초기 국민에게 장담했던 약속이 공수표가 될 판이니 말이다. ‘연평균 7% 성장’에서 ‘임기 내 7% 성장’으로, 결국엔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로 이어진 말 바꾸기도 통하지 않게 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집권 10년간 연평균 4.7%였던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최근 4년 동안 3.8%로 떨어졌다. 잠재성장률과 실제 성장률의 격차도 0.3%에서 0.5%포인트로 더 커졌다.

전망은 더욱 우울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한국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을 2.4%로 추정했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앞으로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의 약화는, 이명박 정부의 단골 핑계인 대외여건을 탓할 수도 없다. 소비와 투자 부진이 이어지고, 투입 가능한 노동력이 점차 줄어들며, 수출의 부가가치 파급효과까지 계속 약화하는 게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대부분 정책 실패의 결과다.

결국 고환율과 저금리를 기조로 한, 수출대기업 위주의 외끌이 성장 전략이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린 것이다. 정부는 게다가 잠재적 위기 요인까지 계속 키워왔다. 빚은 불어나는데 실질소득은 제자리에 머문 결과 가계의 위험지수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공공부채, 대-중소기업 등 각 부문간 격차 심화도 다음 정권에 넘길 폭탄이다.

이명박 정부의 질주는 나름대로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대표적인 게 ‘낙수(트리클 다운) 효과’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경제적 성과를 올리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돌아가 나중에 전체가 좋아진다는 선순환을 믿었다. 그러나 이런 선순환의 고리는 허구로 입증된 지 오래다. 허구에 근거한 믿음이 맹신이며, 맹신에 근거한 질주는 재앙을 초래한다.

오늘로 대통령 임기는 315일 남았다. 짧지는 않지만 큰 성과를 내기도 힘든 기간이다. 그래서 무리한 주문은 할 수 없다. 최소한의 상식과 원칙을 존중하라는 것뿐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만이라도 지켜달라는 거다. 맹신에 근거한 질주는 시간이 갈수록 제동을 걸기 힘들다. 빨리 멈추는 게 최선이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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